기획 완결 병영의추억

<46>배우 안석환 - 육군6사단 복무

입력 2011. 04. 01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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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도 즐길 줄 아는 자세가 행복의 비결”


군 시절 인사장교와 함께 찍은 사진(모래
시계 위·왼쪽)과 연극 ‘대머리 여가수’에서
열연 중인 안석환(아래).

 “연극이 끝나고 난 뒤 혼자서 객석에 앉아 조명이 꺼진 무대를 본 적이 있나요 … 힘찬 박수도 뜨겁던 객석의 찬사도 이젠 다 사라져 객석에는 정적만이 남아 있죠. 침묵만이 흐르고 있죠.” 연극 ‘대머리 여가수’가 끝나고 난 뒤 필자는 정말 객석에 혼자 앉아 있었다. 공연 중에 사진을 찍어도, 전화를 받아도, 시끄럽게 떠들어도 모든 것이 허용되는 독특한 연극을 한 편 보고 나서인지 그 여운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차마 그 여운을 지워버리기도 전에 무대 뒤쪽에서 나타난 그! 바로 배우 안석환이었다. 아니 이번에는 연출가 안석환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이번 연극에서 1인 3역을 맡아 종횡무진 활동 중이다. 병영의 추억을 공유하기 전, 작품에 대한 궁금증부터 풀려고 했으나 대한민국 예비역의 대표 명함인 육군병장 안 병장은 관등성명부터 외쳤다. 확실한 발성으로 뿜어내는 힘찬 웃음소리와 함께….

“1981년 6월 30일 입대, 83년 10월 13일 제대입니다. 이야, 날짜까지 정확하게 기억나네요. 인터뷰 때문에 특별히 찾아보거나 한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 당시 교련 혜택이 있었기 때문에 4개월 정도 단축한 군 생활을 즐길 수 있었죠. 왜 군 생활을 즐겼다고 하느냐고요? 대한민국 사나이라면 당연히 군대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와야 하는 거 아닌가요? 전 아드레날린이 넘쳐나는 열정의 사나이니 즐길 줄 알아야죠.(하하) 의정부 101보충대에 입소해 6사단에서 복무했습니다.”

 배우 안석환의 이야기보따리는 거침이 없었다. 질문하기도 전에 그는 병영의 추억을 한보따리 풀어냈다. 그러면서 바로 군 시절에 터득한 인생 십계명 중 한 가지를 들려주고 싶어 했다. 바로 ‘계산하지 말자’라는.

 “지금도 기억납니다. 훈련소 내무반장으로 계셨던 김수철 하사께서 명심 또 명심하라며 전한 메시지였지요. 처음에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군 생활을 조금씩 하면서 뼛속까지 느끼게 된 거죠. 내가 조금 힘들면 동료들이 편하지 않습니까?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서 생활하다 보면 언젠가는 더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겁니다. 이게 바로 인생의 진리 아니겠습니까?”

 50여 년 가까이 자신의 길을 걸어오면서 가슴속에 싹틔웠다는 인생 십계명. 인생의 지혜가 켜켜이 쌓이면서 자신을 더욱 단단하게 해 줬기에 어떠한 어려움도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계명을 군대에서 깨우쳤다는 배우 안석환. 세월의 짙은 내음이 살짝 자라난 구레나룻과 어우러져 그만의 오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한번 더 돌아보고 싶어지는 사람으로 살아왔다는 건 정말 인생 제대로 살았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러한 색깔이 그에게는 드리워져 있었다.

 “전 참 열심히 군 생활을 했습니다. 애써 긍정적으로 마음먹자고 다짐한 것이 아니라 이것도 바로 내 인생의 일부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아, 이런 추억이 떠오르네요. 엄동설한 철원이 얼마나 춥습니까? 온도계의 수은이 아래쪽에 다 몰려 있는 건 그때 처음 봤습니다. 소변을 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얼어버리는 살인적인 추위. 그런데 사단 연병장에서 사단장님 이·취임식이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나마 저야 군복 안에 내복이라도 입고 있었지, 군악대는 옷도 제대로 못 입고 어찌나 추웠을지…. 한 트럼펫 연주자의 입술에 트럼펫이 달라붙었는데 입술이 살짝 찢어져도 열심히 부는 겁니다. ‘저것이구나. 저래야 군 생활 잘 하는구나.’ 그 후로 일상에서 느끼는 삶의 깨달음을 하나씩 찾아봤답니다.”

 그에게 병영의 추억은 하나씩 하나씩 벗겨 내는 양파처럼 아니 돌돌 풀려 나오는 실타래처럼 계속 쏟아지는 즐거움이었다.

100원 하던 삼립빵을 잔뜩 사 와서 많이 먹기 내기를 했던 추억, 155㎜ 견인포 담당이라 행군 때 차에 싣고 떠나며 동기들에게 부러움을 좀 샀던 추억, 휴가 나와서 집 전화받을 때마다 ‘통신보안 88입니다’를 외쳤던 추억까지 추억은 또 다른 추억에 덧입혀져 지금의 안석환을 만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을 얻는 데 큰 도움을 준 대한민국 육군이 너무 감사하다고 전하는 그. 그가 꼭 후배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메시지는 간략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한마디였다. 바로 ‘시간은 간다.’

 “내가 뭘 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갑니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지요. 병역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니까요. 즐거움도 괴로움도 즐길 줄 아는 지혜, 그거 하나 깨달을 수 있다면 세상 모든 행복은 다 내 것이 될 겁니다. 아직도 만나면서 서로 돕고 의지하는 예비역들의 88동지회.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하나 둘씩 모여 지난날의 이야기도 하고, 세상 살아가는 재미도 좀 나누는 거죠. 마누라 흉도 가끔 보고요.(하하) 친구는 오래될수록 좋은 거잖아요. 그러고 보니 군 시절도 참 오래전 일이네요. 그 당시는 누구누구 병장님 그랬어도 사실 나이가 다들 비슷하잖아요. 제대하면 다들 친구하고 그러는 거죠.”

 시간은 사람을 단단하게 하나 보다. 추억은 사람을 깊게 하나 보다. 군대는 남자를 철들게 하나 보다.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떠났지만 무대는 여전히 뜨거운 환호성을 기다리는 여운을 남기고 있다. 한 대한민국 예비역이 디렉팅한 바로 그 무대의 여운을….


안석환은?
1959년 파주 출생. 단국대 경영학과 졸업. 87년 연극 ‘달라진 저승’으로 데뷔해 ‘남자충동’ ‘아트’ ‘노이즈 오프’ ‘웃음의 대학’ 등을 거쳤고, 영화 ‘너에게 나를 보낸다’ ‘텔 미 썸딩’ ‘조폭 마누라’ 등에 출연해 배우 커리어를 다졌다. 드라마 ‘마이걸’ ‘경성 스캔들’, ‘바람의 화원’ ‘꽃보다 남자’ ‘추노’ 등에서 명품 연기력을 펼치며 브라운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현재 공연 중인 연극 ‘대머리 여가수’로 첫 연출 데뷔를 선언,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인정받고 있다.

<조기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iammaximu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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