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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25전쟁 당시 `도살작전'을 죽인 겨울 호우

입력 2011. 02. 2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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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집중호우 … 퇴각하는 敵 섬멸 못해


“아니, 세상이 거꾸로 뒤집힌 모양일세, 한겨울에 집중호우가 내리다니, 원.”

1951년 2월 유엔군이 벌인 도살작전(Killer Operation) 때 일어난 기상이변이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해 지금에야 한겨울에도 심심치 않게 비가 내리지만, 당시의 겨울은 예년 평균치를 넘어설 정도로 무척 추웠다. 그런데 그 한겨울에 수백㎜의 호우가 내린 것이다.

 전장에서 기선을 제압하고자 중공군은 4차 공세를 펼쳤으나 1951년 2월 18일 유엔군이 지평리에서 승리하면서 공산군은 패주하기 시작했다.
도살작전을 지휘한 리지웨이 장군.

도살작전에서 순직한 무어 소장의 기념비.
도살작전에 참가한 미 1기병사단 마크.

미 8군사령관 리지웨이 장군은 중공군의 4차 공세가 불과 1주일 만에 격퇴되고, 유엔군이 다시 작전의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자 적이 정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남으로 많이 내려와 있던 제천~영월 지역의 적 주력 세력을 포위 섬멸하기 위해 반격작전을 계획했다.

작전의 명칭은 ‘적의 주력을 포위 섬멸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 ‘도살작전’으로 명명했다.

 도살작전의 강원도 지역에 투입된 병력은 무어 소장이 지휘하는 미 9군단으로 예하에는 미 24사단, 미 1기병사단, 미 2사단, 미 1해병사단, 한국군 6사단, 영국군 28여단 등이 있었다.

1951년 2월 21일 10시, 미 9군단은 횡성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저항이 만만치 않은 데다 낮은 구름으로 인해 공중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공격은 조금도 진전되지 않았다. 공격에 조바심을 낼 무렵 낮게 흐렸던 날씨는 밤이 되면서 이내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비의 강도는 강해져 마침내 하천과 강물이 범람하기 시작하면서 전투병력뿐만 아니라 차량도 물에 떠내려갈 지경이 됐다.

이 비는 거의 40시간이나 계속 내리면서 지금까지 흰 눈에 덮여 있던 전장을 일시에 진창으로 바꾸어 놓고 말았다. 이런 호우는 수십 년 만에 발생한 기상이변이었다.

이 당시 유엔군은 모래가 많아 건조하다는 이유로 강의 하상(河床)에 지휘소와 보급소를 설치했다. 그러나 호우가 내리면서 야간에 갑자기 하천이 범람하자 서둘러 피난을 시작했으나 때는 이미 늦어 버렸다.

불어난 강물로 유선망은 단절되고, 보급품은 물에 떠내려갔다. 그리고 각 하천과 강은 통과가 불가능해졌고, 한강에 가설해 놓았던 주교(舟橋)마저 떠내려가 사단의 보급로는 완전히 차단되고 말았다.

 비는 23일 새벽 4시쯤 돼 겨우 멎었으나 호우와 함께 눈이 녹은 물로 도로와 하천이 범람해 전장은 몸도 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진흙탕이 되고 말았다.

미 5기병연대는 2월 24일 최초 목표였던 469고지를 천신만고 끝에 탈취했다.

그러나 바로 공격중지 명령이 군단으로부터 하달됐다. 이것은 보급두절의 우려와 진흙탕, 그리고 공산군의 완강한 저항과 함께 최초 작전목표를 달성할 가망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이날 군단장인 무어 소장이 전선시찰을 위한 비행 중 헬기가 한강의 탁류로 추락해 심장마비를 일으켜 전사한 사건이 발생한 것도 한 이유였다.

 미 제1기병사단사에는 ‘군단이 사단의 공격을 허가했었다면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포위는 가능했을 것’이라고 기술하면서 군단사령부의 판단을 비난하고 있다.

하지만 이 당시는 사단의 주보급로였던 여주~곡수장~지평리간의 전 교량, 특히 한강에 가설했던 주교까지 떠내려가 버린 상황이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보급품 수송을 서둘렀으나 사단 전 장병에게 하루 겨우 두 끼의 급식밖에는 할 수 없는 실정이었다. 공중보급도 실시했지만 다른 사단도 보급품의 결핍은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일상 쓰는 소화기 탄약 정도만 간신히 보급되고 있는 상황에서 적에 대한 계속적인 공격은 무리가 아닐 수 없었다.

공병들의 노력으로 2월 25일 새벽 4시에 한강의 가교는 완성됐으나, 지휘소도 진지도 보급소도 도로도 진흙탕이 돼 버려 며칠 동안 공격은 미뤄지고 말았다.

 호우로 고전하던 미 1해병사단은 3월 4일에야 겨우 횡성을 점령했다.

한편 원주~횡성 축선의 우측에서 공격하던 미 10군단과 국군 3군단의 공격지역에서는 험준한 산악을 이용, 제2전선을 형성한 북한군 유격대와 치열한 교전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폭설이 내리면서(산악지역이기에 비 대신 눈이 내림) 유엔군의 기동은 극도로 제한받게 됐다.

이에 따라 공격부대들의 진격은 지연돼 겨우 3월 6일에야 예정된 목표선에 도달했다.

 미 8군은 14일간(2. 21~3. 6) 계속된 도살작전에서 퇴각하는 적의 주력을 포위 및 섬멸하기 위해 기동성이 우수한 미군사단 위주로 추격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예기치 못한 기상이변으로 후퇴하는 적을 포위 섬멸하지 못하고, 진흙탕 위로 겨우겨우 전진해 적의 뒤를 쫓아가는 수준에 그치면서 작전을 종료했다.

미군은 전사에서 이 전투를 “도살(Killer)작전을 죽인(Kill) 호우전투”라고 명명하고 있다.


[TIP]준비된 지휘관만이 승리한다

도살작전처럼 전투나 작전에서 비가 주는 영향은 무엇일까? 먼저 병력 및 장비의 기동제한을 가져오며, 병력의 사기와 능률에도 영향을 준다.

탄약으로는 소이탄 효과 저하가 있으며, 정보 및 전자전에서는 사진 및 적외선 수집 장비의 능력이 저하되며, 표적 반사파를 차징(Charging)해 레이더 교란현상이 발생한다.

화학전에서는 생물학 작용제와 화학 작용제의 효과를 감소시킨다. 비가 시간당 13㎜ 이상 내리면 항공작전에서의 표적획득이 제한되며, 전자장비에서는 대기권 반사 송신방해와 함께 레이더 탐지거리 및 정확도가 감소한다. AM/FM 무선방해 현상도 발생한다.

시간당 25㎜ 이상의 비가 내리면 청음감지기 및 레이더 효과가 감소하며, 시간당 50㎜ 이상의 비가 내릴 경우 병력·장비 이동속도가 지연되고 교통능력에 제한을 받는다.

전쟁에는 예측할 수 없는 사태가 자주 발생한다. 전투에 임하는 지혜로운 지휘관이라면 전투가 벌어질 지역의 토양조건과 날씨 변화 및 특성을 미리 파악해야만 한다.

갑작스럽게 내린 비나 눈은 단 몇 분 만에 건조하고 마른 전쟁터를 진흙탕의 수렁으로 바꾸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준비된 지휘관만이 승리할 수 있는 것이다.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전문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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