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여군이선진강군미래다

<19>각국의 여군 운영 실태⑤제2차 세계대전과 여군

김여진

입력 2009. 05. 20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4:39
0 댓글
  • 네 차례에 걸쳐 각국의 병과별 여군 운영 현황은 여군 활용에 대한 인식과 실천의 통시적 변천과 국가별 편차를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제2차 세계대전 중 여군의 활동상은 여군 활용 확대의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총력전의 시대를 열었던 제1차 세계대전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은 총력전 체제의 본격적인 등장을 의미했다. 이미 한차례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유럽 각국은 여성을 동원, 후방 보조업무에 투입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국가에 의해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동원되거나 자원입대한 여성들은 공식적으로 군인의 지위가 부여됐고, 남군과 함께 실제 전투에까지 투입되기에 이르렀다.
    미국은 41년 육군여군지원단을 창설했으며, 42년 7월 지원단 장교후보생 1기 440명이 임관했다. 이들은 아이젠하워 장군의 요청으로 42년 11월 북아프리카 전선에 타자병과 전화교환병으로 파견됐다. 지원단은 43년 의회 입법을 거쳐 육군여군단으로 승격하게 되는데, 이들은 민간인 신분을 벗고 군인으로 인정받으며 계급도 받았다.
    육군 이외 해군 역시 당시 영부인인 엘레노어 루스벨트의 노력으로 미 해군 여군단(WAVES: Women Accepted for Volunteer Emergency Service)이 창설됐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군을 징집하기 시작한 최초의 주요 교전국이다. 42년 병력 자원이 부족했던 영국은 여성을 대상으로 징병제를 도입, 시행했다.
    개전 초인 39년 12월 3만6100명, 전체 병력의 2.27%를 차지했던 여군은 43년 9월 최고점에 달해 45만3200명, 9.93%까지 증가했다. 영국군 10명 중 1명이 여군이었던 것이다. 특히 공군이 여군 비율이 높았는데 43년 3월 15.96%에 달했다.
    영국 여군은 고사포를 다루는 대공부대에서 그 활용도가 높았다. 1개 대공중대는 남성 189명과 여성 299명으로 편제됐고 남성이 포격을, 여성은 보조 업무를 수행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인 17년 여성 후방보조원 프로그램을 시행한 바 있는 독일군은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도 민간인 여성 1만4000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개전 초기 독일이 유럽 대륙을 석권하면서 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전선으로 더 많은 남군을 보내기 위해 군 보조원으로 근무하는 여성 인력을 늘렸다.
    전쟁 당시 독일에서 여성 인력을 가장 많이 활용한 병과는 공군으로, 여성 공군보조원을 편성해 대공 업무에 투입했다. 41년 말 3만5000명이었던 여성 공군보조원은 45년 10만 명을 넘었다. 이들은 주로 탐조등과 방공기구, 레이더를 작동했다. 종전 무렵 350개의 탐조등 중대마다 여성 보조원 44명이 배치됐다. 그러나 독일은 여성 보조원에게 군복을 입히고 군율을 적용하면서도 군인 신분은 부여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군에서 근무하는 민간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여군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한 국가는 소련이었다. 여군과 남군의 통합도 역시 가장 높았다.
    41년 6월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소련은 자녀 없는 여성을 징집 대상에 포함했다. 독소전쟁이 끝날 무렵 소련군에는 80만 명의 여군이 있었고, 전쟁 절정기인 43년 말에는 그 수가 100만 명에 달해 전체 병력의 8%를 차지했다.
    소련은 거의 모든 병과에서 여군을 활용했다. 의무병은 거의 대부분이, 통신병은 절반이 여군이었다. 여군 전투기 조종사, 여성 폭격기 조종사, 여성 함상 근무원, 여성 소총병, 여성 탱크병, 여성 포병대원, 여성 저격병이 등장했다. 여군만으로 구성된 지상전투 부대 창설과 전선 투입 시도도 있었다.
    정비병부터 조종사까지 여성으로만 구성된 3개 비행연대가 편성돼 각각 항공전투·야간폭격·수송을 담당했다. 소련군 제588야간폭격기 여성 비행연대는 독일군에게 ‘밤의 마녀’란 별명을 얻을 정도로 큰 전공을 세웠다.
    소련은 여성 저격병을 대거 양성해 전선에 투입하기도 했다. 나노 솔로베이란 여군 저격병은 25일 동안 독일군 1개 중대 전체를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독소전쟁 기간 동안 여군 저격병에 의한 독일군 희생자는 1만1280명에 달했다.

    사진설명:저격병 양성학교에서 저격병을 가르치는 류드밀라 파블류첸코(가운데) 중위. 파블류첸코는 300명이 넘는 독일 군인을 사살한 특급 저격수였다. 출처 ‘서양사연구’ ◆참고문헌: 류한수, “제2차 세계대전기 여군의 역할과 위상:미국, 영국, 독일, 러시아 비교 연구”, 『서양사연구』, 제35집(2006.11)

    김여진 기자 < icequeen@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