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마케팅날씨

<116>빅 싱크<Big Think>와 조선소

입력 2008. 12. 11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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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빅(Subic)은 전 세계에 잘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초라한 곳이 돼 버렸다.”(고든 상원의원)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 북서쪽으로 110km 떨어진 수빅 만(灣)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미 해군기지였다. 1992년 미군이 철수할 때 미군은 80억 달러에 달하는 전력·통신·공항·항만 등 인프라를 남겨 두고 떠났다.

    그러나 16년이 지나는 동안 수빅 만의 시설들은 녹슬고 노후화해 버렸다. 몇 년 전 필자가 찾았던 수빅 만은 피나투보 화산재가 아직도 덮여 있는 무너져 가는 도시였다. “우리에게 한국의 H중공업은 구세주입니다. 일자리와 함께 조선국의 꿈을 주었지요.”필리핀 상공장관의 말처럼 한국은 그들에게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는 꿈을 줬다. 무너져 가던 도시에 거대한 조선소가 들어서고, 망치 소리와 용접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비가 많은 곳에는 조선소를 지을 수 없다. 또 연관 산업이 없는 곳에 조선소를 짓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필리핀에 조선소를 만들겠다는 말에 많은 사람이 반대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관련 산업이 전혀 없으므로 못 하나에서부터 모든 원·부자재를 외국에서 실어 와야 했다. 그리고 5월부터 11월까지 긴 우기 동안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지 않으면 열대지방의 폭염으로 일하기가 힘이 든다. 이런 날씨 조건에서 용접이나 도장 같은 조선소의 핵심 공정을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그러나 H중공업은 창조적이고 대담한 아이디어를 갖자는 ‘빅 싱크(Big Think)’ 전략으로 밀어붙였다. 열대의 폭염을 이기기 위해 24시간 2교대 근무를 했다.

    부품 운반·배치 같은 위험한 작업은 낮에 하고, 용접·도장 같은 노동집약적인 일은 밤에 하도록 했다. 열대의 열기를 피하면서 작업 효율은 높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이었다.또 다른 상상력의 결정판은 실내 작업이었다. 긴 우기에 대비해 철판을 자르고, 가공하고, 도장하고, 용접하는 시설을 기다란 일관 실내 공정으로 해결하도록 공장을 지었다.

    여기에 앞뒤가 트인 집 모양의 철제 비가림 시설(shelter)을 만들어 비 오는 날에도 도크에서 용접·도장을 맘대로 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하여 올해 우리나라 조선회사가 해외에 지은 종합조선소에서 만든 첫 번째 컨테이너선이 탄생했다.불가능한 날씨 조건을 가능한 조건으로 만들어 낸 H중공업의 ‘역발상 날씨 마케팅(?)’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얼마나 유쾌·통쾌·상쾌한 일인가.
    <반기성 연세대 지구환경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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