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다시보는6·25

<93>한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정호영

입력 2008. 11. 2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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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원일 제독은 광복 후 모든 여건이 불비(不備)한 상황에서 바다를 사랑하는 사나이들을 규합, 대양 해군의 초석을 다지고 성장케 한 한국 해군 창설의 주역이다. 그런 그를 뭇사람들은 ‘한국 해군의 아버지’라 칭하며 변함없는 존경심과 애정을 표한다. 그는 마치 대한민국 해군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해군 창설과 발전에 일생을 바친 진정한 바다의 신사였다.

    한일합병 불과 1년 전인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상해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의장(국회의장)을 지낸 항일독립투사인 손정도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났다.당시 임시정부 대통령은 이승만 박사로 그는 1919년 12월 28일 대통령에 취임했다. 일제가 눈독을 들이고 있는 저명한 독립운동가인 아버지로 손원일의 가족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았다.

    그는 만주에서 중학교를 졸업했다. 이때 김일성은 그의 동생(손원태)이 다닌 육문중학교에 다녔다. 손정도는 자신의 친구인 김일성의 아버지(김형직)가 사망하자 어려움에 처하게 된 그의 아들 김일성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다. 김일성과 그의 동생은 이런 연유로 같은 중학교에 다녔고, 이후 서로 친한 친구가 돼 오랫동안 그 인연을 이어 갔다.

    손원일은 아버지가 독립운동과 목사(감리교)로서 목회(牧會) 활동을 위해 중국 곳곳을 전전했기 때문에 당시 독립투사들이 그랬듯이 가족의 생계는 그의 어머니 몫이 됐다. 그는 중국 길림에서 중학교를 마친 후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상해로 와서 중앙대학교 항해과에 입학했다. 그가 항해과를 지망한 이유는 바다에서 조국의 미래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나라를 잃었지만 언젠가 나라를 되찾는 날엔 우리도 바다로 뻗어 나가야 한다. 바다는 우리가 세계로 뻗어 나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한 후 내린 결정이다. 항해과를 수료 후 그는 외국 상선의 선원이 돼 지중해·대서양·인도양·태평양을 누볐다. 하지만 그의 부친은 그가 오대양을 누빌 때인 1931년 길림의 한 병원에서 가족의 임종도 없이 49세의 나이로 쓸쓸한 죽음을 맞았으나 그는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일제로부터 받은 고문과 과로로 생긴 위궤양이 사인(死因)이었다. 일찍부터 바다의 중요성을 깨달은 그는 광복 후 해군 창설에 매진했다. 그는 가산을 털어 해군의 전신이 될 해사대를 조직하고 대원을 모집했다. 미군정하에서 그는 깊은 인품에서 배어 나온 뛰어난 친화력과 수완을 발휘, 해사대를 해방병단으로 발전시켜 나갔다.

    해방병단은 장차 한국이 독립하면 해군으로 개편한다는 전제 아래 창설한 공식 군사조직이었다. 군대 조직을 갖춘 후 그는 해군 간부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 해군사관학교 전신인 해군병학교를 1946년에 설립, 1기생을 모집했다. 하지만 생도들을 가르칠 스승이 없었다. 그는 진해고등해원양성소 출신들을 초빙해 가르치게 했다.

    해원양성소를 수석 졸업한 이성호 제독이 이때 해군에 들어와 총장까지 진출했다.육군소위로 임관한 김성은 장군이 해군에 온 것도 손원일의 권유에서다. 해군은 손원일의 노력과 발품에 의지해 그 면모를 일신하며 날로 발전했다. 건국 후 그는 초대 해군 총장이 돼 모금을 통해 전함을 구입했고 상륙작전에 대비 해병대를 창설하는 등 해군 발전에 노력했다.

    6·25 때 해군·해병대가 인천상륙·서울탈환작전에 참가한 것은 모두 그의 공이다. 인천·서울 탈환시 그는 해병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싸웠고, 군의 최선임자로서 이 지역의 치안유지에 기여했다. 그는 휴전 1개월 전인 1953년 6월 30일 국방장관에 임명돼(44세) 전후 군의 전력증강과 발전에 기여했다. 해군 창설과 군 발전에 남긴 그의 공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남정옥 군사편찬연구소 책임연구관>

    정호영 기자 < fight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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