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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코소보 분쟁

입력 2007. 12. 1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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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년 3월 초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분리주의 반군들이 세르비아 경찰을 공격하면서 쌍방 간 무장충돌이 일어나 코소보 사태가 격화되기 시작했다.세르비아는 경찰력을 동원, 즉각 반격에 나서 반군과 반군지역 주민들을 무차별 학살하는 등 강경작전을 전개했다. 이에 맞서 알바니아인들도 코소보 해방군을 중심으로 한 게릴라전으로 대응했다.

    보스니아 내전 종식으로 한동안 잠잠했던 발칸반도가 또다시 전화에 휩싸인 것이다.코소보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의 발원지였다. 그러나 터키제국이 세르비아를 점령한 후 이곳에 알바니아인들을 대거 이주, 정착시킴으로써 이때부터 세르비아인과 알바니아인 간에 민족·종교적 갈등이 노정되기 시작했다.

    45년 구 유고연방이 성립될 때 코소보는 자치주 지위를 부여받았으나 89년 ‘대 세르비아 건설’을 내세운 밀로셰비치 대통령이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해 버렸다. 이에 전체 주민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알바니아인들이 반기를 들고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해 분쟁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90년대 초 구 유고연방이 해체되면서 세르비아와 몬테네그로 공화국만 신 유고연방을 구성하고 나머지 4개 공화국은 각각 독립하게 된다. 이에 고무된 신 유고연방 세르비아 공화국에 속해 있던 알바니아인들도 독립을 추구, 92년 코소보공화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코소보 해방군’을 결성, 본격적인 무장투쟁을 전개하자 세르비아가 전면적인 소탕작전을 감행한 것이다.

    세르비아의 코소보 해방군에 대한 소탕작전은 이른바 ‘인종청소’로 이어졌고 이를 피한 알바니아인들의 대탈출로 30만 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98년 6월 코소보 사태에 대한 개입을 선언, 나토군을 코소보 주변에 배치하고 세르비아군의 철수와 인종청소의 즉각적인 중단을 촉구했다.

    밀로셰비치가 이를 무시하고 코소보 해방군에 대한 공세를 한층 강화하자 나토는 세르비아에 대한 무력 사용을 결정하기에 이른다.그러나 러시아·중국은 나토의 입장에 반대, 코소보 사태 해결을 유엔이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엔은 사태 해결을 위해 코소보에 나토 평화유지군 주둔을 골자로 하는 평화안을 제시했으나 세르비아는 이를 거부했다.

    결국 나토는 99년 3월 24일 세르비아에 대한 공습을 단행했다. 러시아는 나토의 유고 공습을 제국주의적 만행이라고 비난하면서 흑해함대를 아드리아 해에 파견하는 등 군사적 시위에 들어갔다. 중국도 나토의 유고 공습에 반대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 소극적인 대응에 그쳤다.

    그런데 5월 7일 미군기에 의한 베오그라드 주재 중국 대사관 오폭사건이 발생하자 중국도 미국과 서방을 맹렬히 비난하기 시작했다. 단기간의 공습을 통해 군사적 목표를 달성할 것으로 판단했던 미국은 러시아·중국의 강경한 태도와 국내 반전 여론으로 지상군의 파견을 유보한 채 공습만 계속했다.

    미국을 위시한 나토는 세르비아 공격을 계속하면서 한편으로 유고의 후견자 러시아와 평화협상을 추진, 그 결과 평화안의 초안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99년 6월 3일 유고 정부가 마침내 코소보 평화안을 수용함으로써 78일간 계속됐던 코소보 무력충돌은 일단 종결을 보게 됐다.

    분쟁의 중심에 있던 밀로셰비치는 실각한 후 체포돼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감옥에서 사망했고, 신 유고연방국명도 세르비아몬테네그로로 바꿨지만 정국은 아직도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다행히 유엔 평화유지군의 주둔으로 분쟁의 확대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코소보 문제는 관련국 간 이견이 표출되고 있고, 또 내년에 코소보가 독립을 선언할 것으로 예상돼 또 다른 갈등 요인이 잠복하고 있다.

    국제법의 기본 원칙은 민족자결 보장이다. 유엔헌장과 국제 인권규약에서도 민족자결권을 신성한 권리로 선언하고 있다. 이젠 약자의 희생만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던 시대는 갔다. 강자의 양보, 약자의 용서, 그것이 진정한 평화의 공통분모임을 국제사회는 새롭게 인식해야 할 것이다.

    <김영이 군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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