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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여행<43>외래어 표기

입력 2007. 11. 2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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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다른 언어로부터 들어온 말을 표기하는 원칙을 정한 외래어 표기법이 있다. 이 표기법 규정 제1항은 “외래어는 국어의 현용 24 자모만으로 적는다”이다. 새로운 자모를 만들어 외래어를 표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밝힌 것이다.
이 원칙에 수긍하지 않고 외래어를 적기 위하여 새로운 자모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주로 영어에서 들어온 말이 주장의 근거가 된다. 영어의 발음 중에는 국어의 현용 자모로는 구분하여 표기할 수 없는 발음이 있다. 예를 들어 p와 f, b와 v, l과 r가 그것이다. 이들 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새로운 자모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글은 새로운 자모를 만들기 쉽다는 점이 이런 주장의 배경이 되기도 한다. 세종대왕은 이미 만들어진 자모를 조합하여 새로운 자모를 만들 수 있도록 하였다. 그래서 한글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표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왔다. 새로운 자모를 만들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왜 한글의 우수성을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지 불만이다.
얼핏 생각하면 평소에 자연스럽게 외국어 발음을 익힐 수 있어 좋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 주장은 외래어의 특성, 문자의 성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문제점이 있다.
외래어는 우리말에 들어와 쓰이는 말이다. 외래어가 우리말에 들어올 때 우리말에 적합하게 발음 등 여러 가지가 바뀐다. 이 주장은 이런 외래어의 특성을 부정하는 주장이다. 외국어의 발음을 제대로 하기 위하여 우리말을 바꾸라는 것이다.
새로운 자모를 만든다 해도 소리가 먼저 구분되지 않는다면 자모는 만드나마나다. 새로운 자모에 대한 발음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평소에 자연스럽게 외국어 발음을 익히니 좋지 않으냐고 할 수도 있지만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사람들조차 부담을 갖는 게 타당한지 의문이다.
새로운 자모도 하나나 둘 정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특이한 발음이 있는 언어에서 새로운 외래어가 들어올 때마다 자모를 만들고 교육을 해야 한다. 일시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불편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chonamh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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