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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여행<42>설사약

입력 2007. 11. 21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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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사약’은 하나의 단어가 상반되는 뜻으로 쓰이는 드문 예이다. 설사를 멎게 하는 약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설사를 하게 만드는 약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이 말은 잘못 사용했다가는 전혀 반대의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설사약’이라는 말이 이렇게 쓰이게 된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설사약’이 ‘설사’와 ‘약’이라는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두 말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을 합성어(또는 복합어)라고 한다. 합성어는 그 말을 구성하는 말들 사이의 관계에 따라 뜻이 정해지는 일이 많다. 그런데 말들 사이의 관계가 여러 경우가 있으면 그만큼 합성어의 뜻도 여러 가지가 나올 수 있다. ‘설사약’이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 것도 ‘설사’와 ‘약’의 관계에서 두 가지 해석이 모두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설사’와 ‘약’의 관계 때문만으로 두 가지 뜻으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감기약, 두통약, 멀미약’ 등 비슷한 성격의 단어와 비교해 보자. 이들 말은 모두 치료하기 위한 약이라는 뜻으로만 쓰인다. 단어 자체로만 본다면 감기나 두통, 멀미가 생기게 할 수 있는 약이라는 뜻으로 쓰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종류의 약이 없기 때문에 실제로 그런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 것이다. 이에 비해 ‘설사약’은 두 종류의 약이 모두 있다.‘설사약’에 이런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는 무슨 뜻으로 쓰였는지 알 수 있다. 말하는 사람의 상태, 앞뒤로 이어지는 말을 들으면 뜻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설사가 나서 설사약을 먹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누구나 설사를 멎게 하는 약이라는 뜻으로 썼다는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전혀 이 말의 사용에 불편함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약국에 환자가 와서 불쑥 “설사약 주세요”라고 하면 약사는 어떤 설사약인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설사약’처럼 사용이 불편한 말은 조정이 불가피하다. 사람들이 점차 어느 하나의 뜻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말을 선택하여 사용하거나 아니면 아예 ‘설사약’은 버리고 각각의 뜻에 맞는 새로운 말을 골라 사용할 가능성이 많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chonamh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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