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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전사여행<12>천안지구전투

입력 2007. 11. 1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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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 IC에서 대전 방면으로 1번 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천안삼거리 공원이 나온다. 매년 7월 8일 삼거리공원 옆에서는 천안시청·한국자유총연맹 천안시지부·천안기독교연합회 등 유관기관과 미8군·육군32보병사단 등 한미 관계자가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당시 천안지구전투에서 전몰한 미군용사 98명에 대한 추모행사를 갖는다.

    ‘7·8 천안지구전투 전몰 미군용사 추모식’으로 불리는 이 민·관·군 합동 추모행사는 1982년 천안기독교연합회와 기독실업인회 후원으로 천안성결교회에서 첫 추모기도회를 가진 것을 시작으로 91년 ‘천안 7·8 전투 전몰 미군기념사업회’(회장 김성렬)가 설립된 뒤 2000년부터는 ‘마틴공원’(천안시 삼용동)이 조성됐다.

    이어 2006년부터 천안시 구성동 충절오거리에서 삼용동 도리티 고개까지를 ‘마틴의 거리’로 지정해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산화한 마틴 대령 등 참전 미군의 희생정신을 기리고 있다. 올해(2007년)부터 미국 켄터키 주 제퍼슨 시에 거주하는 마틴 대령의 유가족을 포함한 전몰 미군 유가족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은 위로서신을 보내고 있으며 한국 초청행사도 추진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최초로 십자훈장을 추서받은 마틴(Robert R Martin) 대령 등 미24사단 제34연대가 참전한 7·8 천안지구전투는 전쟁발발 이후 연대급 미군부대와 사단급 북한군이 벌인 첫 전투다. 50년 7월 6일부터 미군 제24사단 제34연대가 천안지역 방어작전을 전개할 때 연대장 교체명령이 내려져 두 달 전 취임한 라블리스 대령이 해임되고 후임으로 마틴 대령이 7월 7일 오후 6시부터 천안전투를 지휘하게 됐다.

    마틴 대령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제24사단장 딘 소장과 함께 용맹을 떨친 연대장으로 딘 소장은 그를 신임해 34연대장으로 임명했던 것이다. 저녁이 되자 적 탱크는 서서히 천안시내로 진입하기 시작했고 미군 포병부대는 천안삼거리와 도리티 일대에 진을 치고 천안시내를 향해 포격을 가해 철수하는 미군을 엄호했다.

    천안시내는 아수라장이 됐고 미군은 시내 전역에 삼삼오오 흩어져 반격을 가하며 후퇴했다. 마틴 대령은 다음날(7월 8일) 이른 아침 크리스텐 센 하사관과 2.36인치 바주카포를 들고 시내를 순찰하던 중 구성동 네거리에서 적 탱크와 맞서 선제공격을 가했으나 적도 거의 동시에 85㎜ 고폭탄으로 공격해 와 연대장으로 임명받은 지 14시간 만에 현장에서 전사했다.

    이러한 상황으로 지휘체계가 흔들린 미군은 500여 명 중 175명만 살아서 후퇴했고, 나머지는 전사 또는 행방불명되거나 포로(168명)로 붙잡히는 등 7·8 천안지구전투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미군에 첫 패배를 안겨 줬다. 북한군 전력을 얕잡아보다 큰 충격을 받은 미군 지휘부는 이후 북한군 전력을 재평가하고 대규모 부대의 즉각적인 투입을 결정하게 됐다.

    결국 이 천안지구전투로 말미암아 미국·유엔군의 본격적인 참전이 이뤄지고 한국전쟁사에서 역사적 전투의 한 장으로 기록되게 됐다.

    <육군2작전사령부 정훈공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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