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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여행<30>

입력 2007. 08. 08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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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개봉됐던 ‘수학여행’이라는 영화가 있다. 선유도라는 섬에 부임한 젊은 교사가 현대 문명을 접해 보지 못한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수학여행을 하면서 겪는 갖가지 해프닝을 그린 영화다.
서울로 수학여행을 온 섬 아이들은 서울 학교 아이들과 사귀어 그 아이들의 집에서 하룻밤을 자게 된다. 영화는 여러 집을 돌아가면서 보여 준다. 당연히 섬 아이들이 서울 집에서 문화적 충격을 경험하는 장면이 차례로 나온다. 그중에 수남이라는 아이가 서울 아이의 가족과 함께 있으면서 나누는 대화의 장면이 지금 관심을 두는 장면이다. 이들의 대화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수남 : 뒷간이 어디라냐?
서울 아이 : 뒷간?
아버지 : 변소 말이다, 화장실.
이 대화에서 지금은 보통 ‘화장실’이라고 말하는 장소를 가리키는 명칭이 한꺼번에 등장하여 1969년 당시 단어들 사이의 세력 관계를 짐작할 수 있다. 이 대화에서 서울 아이는 ‘뒷간’이라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이 되었다. 아버지의 답변으로 보면 그 대신 ‘변소’나 ‘화장실’이라는 말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영화적 설정이기 때문에 다소의 과장이 있을 수는 있지만 대체로 당시 서울에서 ‘뒷간’이라는 말이 별로 쓰이지 않았기에 이런 장면이 등장했을 것이다. 세 말의 사용 시기가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먼저 등장한 말은 ‘뒷간’일 것이다. 그러다가 이 말 대신 ‘변소’라는 말을 쓰다가 최근에는 이 말마저 밀려나고 ‘화장실’로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뒷간’에서 ‘변소’로, 다시 ‘화장실’로 말이 바뀐 원인은 불유쾌한 느낌을 주는 말 대신에 그런 느낌이 없는 새로운 말을 쓰려는 심리에서 비롯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런 현상을 완곡어법이라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불유쾌한 느낌은 다시 새로운 단어에도 덧씌워진다. 그러면 또 새로운 말로 바뀌게 된다. ‘변소’가 ‘뒷간’ 대신에 등장했다가 ‘화장실’에 밀린 이유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조남호 국립국어원 학예연구관 chonamho@emp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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