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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끝>경기 가평 英연방 참전비

입력 2007. 05. 0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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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얘기가 남자들의 군대 얘기와 축구 얘기라고 한다. 그런데 요새는 한 가지가 더 추가해야 할 것 같다. 프리미어리그 얘기다. 프리미어리그는 영국 프로축구 정규리그 명칭이다. 필자 같은 외국 축구 문외한도 프리미어리그의 첼시 FC가 지난해에 우승을 차지하고 올해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단독 선두에 올라와 있다는 걸 안다.

    더군다나 맨체스터엔 우리나라의 박지성이 뛰고 있지 않는가. 요즈음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영국이 가깝게 느껴진 적이 있을까. 한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유럽인의 영국에 대한 인식은 동경 그 자체다. 영국왕실만 놓고 보더라도 윌리엄 왕자의 별 것도 아닌 행동이 신문·잡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 일쑤다.

    연예뉴스, 영화의 소재로도 자주 등장한다. 유럽 여성들은 윌리엄 왕자와 데이트하는 꿈을 꾸기도 한다. 왕실이 원래 사람들에게 환상을 심어 주는 소재이긴 하지만 유럽인들이 영국을 동경하는 데에는 좀 더 역사적인 이유가 있다. 17세기 영국은 강력한 해군 함대를 배경으로 세계를 호령한 대제국이었다. 18세기의 영국은 또 어떠했나.

    자유주의와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이 바로 영국에서 시작됐다. 영국은 20세기 초반 모든 국가의 모범이었다. 19세기에 영국은 세계지도의 4분의 1을 차지했다.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명을 얻었다. 영국에선 해가 지더라도 식민지에선 해가 질 날이 없었던 것이다.

    1980년대 대처가 등장, 예전의 영광을 되찾으려 했지만 결국 노력은 수포로 돌아갔다. 다만 ‘영국연방’이라고 하여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하나의 느슨한 협조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캐나다·호주·뉴질랜드·인도·싱가포르가 모두 영연방 소속이다. 이 연방에는 영국을 포함해 총 53개국이 속해 있다.오늘 가볼 곳은 영연방 참전기념비(사진)다.

    참전비를 올려 보니 높고 네모난 벽에 네 개의 국기가 그려져 있다. 호주·캐나다·뉴질랜드·영국. 영국연방 소속으로 참전한 네 나라를 상징한다. 사실 영국은 한반도에 군대를 파견하는 것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6월 28일 서울 함락 후 전세는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유엔의 참전 결정 후 미국 외에는 이렇다 할 전투부대 파견을 결정한 나라가 없었다.

    무엇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은 냉전체제 하에서 소련이 만든 서방견제책으로 이해될 수도 있었다. 결국 영국은 한반도의 안보가 자국과 직접적으로 연결되지 않지만 연합국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단결’하는 것이 종국에 NATO의 안정에 유익하리라 판단하고 1950년 6월 6·25전쟁 참전을 결정하고 본토 병력의 이동으로 인한 방어체계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아시아 - 오세아니아 지역 영국연방에 주둔하고 있는 자국 군대와 함께 영국연방군을 조직해 한국에 투입하기로 했다.

    영국연방군은 51년 4월 24∼25일 가평 북방 7㎞ 지점에서 중공군과 만나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중공군이 사창리를 돌파한 후 가평 방면으로 진출, 경춘가도를 차단하기 위해 진격하자 영연방군은 이에 대항해 3일간 진격을 저지해 중공군의 제1차 춘계공세를 좌절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13m 높이의 영연방 참전기념비는 그날의 전투가 벌어진 경기도 가평군 읍내리 365 - 1번지에 세워져 있다. 67년 유엔 한국참전국협회와 가평군이 세운 것이다.참전비 옆을 보면 가평군립도서관이 있다. 치열했던 역사의 현장과 한창 배우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열기가 한곳에 묘하게 겹쳐져 있다.

    무엇이 남겨졌고 무엇을 배우고 있는 걸까 문득 생각해 본다. 통일이 된다고 해서 참전비가 없어져야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상처는 단순히 덮는다고 해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면 이 참전비는 냉전 기념물이란 이름으로 뼈저린 아픔의 기억을 되살리지 않을까.

    <서동일 연구관 국가보훈처>

    현충시설 탐방 연재를 이번 회를 끝으로 마칩니다. 그동안 많은 사랑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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