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군사문화재

<147. 끝> 못다한 이야기

김병륜

입력 2006. 12. 27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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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람들은 모두 거북선의 실체를 궁금해한다. 학자들은 거북선 내부 구조가 2층이냐 3층이냐를 놓고 수십 년째 논쟁해 왔고, 장갑 구조에 대해서도 여전히 결론이 나지 않고 있다.
    바다 속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거북선의 잔해를 찾기 위한 노력도 치열하다. 경상남도청은 지난 10월 30여 명의 탐사단을 구성, 거액의 예산을 투입해 앞으로 3년 동안 바다 속을 뒤져 거북선을 찾을 예정이다.
    하지만 이 모든 논쟁과 노력은 어떻게 보면 한편의 소극이다. 불과 200여년 전인 순조·헌조 때까지도 조선 수군은 거북선을 수십 척씩 운용했다. 거북선을 정규 군함으로 운용하던 조선 수군이 공식 해산된 것이 1897년이다. 불과 100년 전인 1896년에서 1898년 사이 대한제국 군부에 의해 작성된 무기재고표에는 귀선철개 등 거북선 부품 명칭이 등장한다.
    최소한 1900년대 초반만 해도 거북선을 봤거나 그 구조를 자세히 아는 노인들이 생존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해 일제 강점기에라도 누군가 경남·전남 등 수군 거점 지역에서 현지 조사를 실시했다면 거북선의 실체는 진작 밝혀졌을지 모른다.
    조금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였다면 사라지지 않았을 역사의 유물·흔적들이 허망하게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사례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임진왜란 전공자들이 받은 선무공신교서 중 남아 있는 것은 6건이다. 권응수(보물 668-2호), 이광악(보물 952호), 원균(보물 1133호), 이운룡(보물 1212호) 장군의 선무공신교서는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일본에서 발견된 김시민 장군 선무공신교서는 지난 7월 MBC의 대대적인 캠페인과 국민들의 성금으로 환수한 상태다.
    하지만 가장 가치가 높은 이순신 선무공신교서는 여전히 비지정문화재인 데다 본지의 추적 보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다. 원균의 공신교서가 보물로 지정됐는데 이순신 장군의 공신교서는 문화재로 대우받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통영수군고문서도 서너 번이나 중앙 일간지를 장식했으면서도 여전히 공식적으로는 소재 불명 상태다.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도 80여년 동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취재 과정에서 사라진 유물의 소재지를 짐작할 만한 단서를 확인했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보도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분실·도난 책임 규명 등 여러 문제가 얽혀 있는 상태에서 무작정 기사화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가짜일지 모른다는 증거를 확인하고도 보물이라는 타이틀에 눌려 기사화하지 못한 유물도 있다. 반대로 가짜로 의심받아 정식 조사도 없이 방치돼 있는 근초고왕 동탁 등 국보급 가짜 유물도 흥미를 끌었다.
    11년 전인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수장고에서 그동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던 대동여지도 목판이 발견된 일이 있었다. 박물관 내부에서 국보급 유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상식 밖의 일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이런 일은 계속되고 있다.
    2003년에는 일제시대 때 경기 화성지역에서 출토된 백제 갑옷이 모 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수십년 만에 재발견된 일도 있다. 한국 판갑옷의 역사를 새로 쓸 만한 유물이지만 복원처리를 통해 정식 공개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할지 아무도 모른다. 연재를 마치면서도 무엇인가 이뤄냈다는 성취감보다 아쉬움이 더 큰 것도 여전히 망각과 무관심 속에 사라져 가는 군사문화재들의 현실을 목격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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