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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문사문화재 순례<144>대취타

김병륜 기사입력 2006. 12. 06   00:00 최종수정 2013. 01. 05   02:41

‘각영 장졸 벌려서서 명금 대취타에 좌기 취한 연후에 대상에서 나는 호령, 놀보 놈 나입하라’. 조선시대 전통 소설 흥부전의 한 대목이다.

병사들이 늘어서 있고 대취타가 연주되는 가운데 놀부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이 내려졌다는 의미다.

판소리 적벽가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목도 있다. ‘독, 난후친병, 교사, 당보 각 두 쌍, 퉁 쾡 뙤 대취타로 나가는구나’. 관우가 전쟁터로 출전할 때 대취타 소리가 ‘퉁 쾡 뙤’하고 요란하게 났다는 것이다.이뿐만 아니다. 심청전·춘향전에도 군인들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대취타가 연주되는 장면이 어김없이 나온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군인이 나오는 장면에서는 자동적으로 대취타를 떠올릴 정도로 이 음악에 익숙했다는 의미다.대취타는 조선시대 의장 행사나 군대에서 사용했던 일종의 군악이다.

취타란 원래 입으로 부는 취악기와 손으로 치는 타악기를 함께 연주하는 것에서 나온 용어다. 취타에 사용되는 취악기로는 태평소·나발·소라 등이 있고 타악기로는 징·북·바라·장고 등이 있다.왕의 행차나 군대의 대규모 행진 등에서는 해금 등 실내악 악기를 추가로 포함시켜 연주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대취타다. 대취타는 군악으로 사용된 음악답게 호령하듯 위엄이 있는 장쾌한 행진곡풍의 가락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조선 후기 때 부대에 소속돼 대취타 등 군악을 연주하는 병사들을 취고수라고 불렀다. 조선 후기 문헌인 만기요람에 따르면 중앙군 핵심 부대인 훈련도감에 183명의 취고수가 있었고, 금위영에는 100명, 국왕 호위부대인 용호영에는 39명의 취고수가 편성된 것으로 나온다. 현대의 대취타 연주자(사진)들은 머리에 초립을 쓰고 황색 옷을 입고 남색 띠를 두르고 지휘자라고 할 수 있는 집사의 호령에 따라 음악을 연주한다.

조선시대 기록에는 취고수의 복장 규정에 대해 “전립을 쓰고 황색 호의를 입으며, 칼을 차고 군악의 각종 악기를 가진다”고 돼 있다. 호의는 색깔이 있는 군복을 의미하고 전립은 군대용 모자이므로 결국 조선시대 취고수는 완전한 군인 복색을 갖추고 연주한 정식 군악대였던 것이다.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대취타는 한때 전승이 거의 끊어질 위기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민간의 광고악대 등을 통해 겨우 명맥만 유지되던 대취타가 다시 문화재로 재평가되기까지 우리 군의 역할이 적지 않았다.

1961년 10월 1일 국군의 날 기념 시가 행렬에 국립국악원 대취타대 52명이 편성·운용되면서 대취타가 다시 재현됐다. 68년에는 육군본부 군악대 예하에 국악대가 편성되면서 대취타는 정식 군악으로서의 위상을 되찾게 됐다. 육본 군악대의 국악대와 89년 창설된 국방부 군악대대의 국악대는 현재 대취타를 연주할 수 있는 대표적 성인 취타대로 인정받고 있다.

국방부 군악대대 국악대장 이희경(학사21기) 소령은 “대취타를 연주하는 국악대는 수백년 이어 온 전통과 뿌리를 갖춘 군악대”라며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 국가원수 등 귀빈들에게 우리의 전통을 선보이는 첨병 역할을 한다”고 소개했다. 일본·중국 등 동북아시아권 국가 중 군과 국가 수준의 의장 행사에서 운용할 수 있는 전통악대를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뿐이다.군에 의해 존재 가치가 재인식되면서 대취타는 71년 6월 중요무형문화재 46호로 지정됐다. 최초 지정 당시 대한제국 겸내취 출신의 최인서 씨가 무형문화재 보유자로 지정됐으며 현재는 정재국이 보유자로 후진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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