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세계의군대

<65>태국군과 정치

김병륜

입력 2006. 12. 04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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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9월 19일 밤 9시 30분, 태국 육군이 소유하고 있는 TV 방송 채널 5가 정규방송을 중단했다. 30분 후에는 방콕 중심부의 정부청사와 총리 관저 앞에 태국 육군 M41 경전차 14대가 나타났다.

    방콕 동북부 칸차나부리 주에 주둔하고 있던 3군 예하 1기갑사단 소속 전차가 수도로 들이닥친 것이다. 방콕 북부 롭부리에 주둔하고 있는 특수전사령부 소속 특수부대도 이미 방콕 시내 곳곳에 침투한 상태였다.

    밤 10시 30분 태국 군부는 손티 육군 사령관 명의로 “군과 경찰로 구성된 정치개혁평의회가 권력을 완전 장악했으며 즉각 헌법 효력을 정지한다”고 발표했다. 태국 군부가 일으킨 전격적인 쿠데타가 성공한 것이다. 느닷없이 전해진 태국 쿠데타 뉴스는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1991년 쿠데타 발생 이후 어느 정도 정치적 안정 궤도에 접어든 듯 보였던 태국에 15년 만에 다시 쿠데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사실 현대 태국의 역사는 군부 쿠데타를 빼놓고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다.

    1932년 전근대적 절대왕정을 버리고 현대적인 입헌군주제로 전환한 것 자체가 군부 쿠데타의 결과였다. 당시 동남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양의 식민지가 되지 않았던 태국에서 최고 엘리트는 다름아닌 군인이었다. 선진 유럽 각국의 군사학교에 유학한 경험이 있는 장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군 엘리트들이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 국왕의 권한을 제한하는 민주적 입헌군주제 헌법을 제정하면서 자연스럽게 군의 정치 개입이 시작됐다. 역설적으로 태국 민주정치의 시작은 군부 쿠데타로부터 출발한 셈이다.

    이후 1991년까지 60여 년 동안 민간 정부 통치하에 있었던 기간은 15년에 불과하다. 나머지 45년 동안을 군부가 통치했다. 군부의 정치 개입이 거의 일상화된 것이다. 그 사이에도 정치 불안이 계속돼 이번 쿠데타까지 포함, 모두 열여덟 번의 쿠데타가 발발했다.과거 태국에서 쿠데타가 이렇게 많이 발생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군내외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정치·사회적 혼란과 민간 정부의 무능함 등 외부적 요인도 쿠데타를 발생시키는 한 배경이 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요인은 군 내부에 있었다. “이미 권력집단이 돼 버린 군부는 정치 권력 유지나 내부 경쟁, 물질적 보상, 혹은 군 내부 인사에 대한 민간 정부 개입을 배제하기 위해 쿠데타를 감행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원인이 무엇이든 군부의 정치 개입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 돼 버린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니다. 쿠데타가 발발한다는 것 자체가 그 나라가 정치적으로 후진적이고 불안정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외신들은 이번 쿠데타의 경우 국민들도 암묵적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탁신 총리의 부정부패에 실망했을 뿐만 아니라 국왕의 추인을 받은 점, 신속한 민정 이양을 약속한 점 때문에 국민들도 쿠데타에 큰 반감이 없다는 것이다.물론 이런 지지가 군부의 정치 개입에 대한 무조건적 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태국 국민들은 이미 1991년 군부 쿠데타와 정치 개입에 대해 시위 등 여러 가지 수단으로 분명한 반대 의사를 표명한 일이 있다. 이번 쿠데타는 15년 만에 발생한 특수한 사건일뿐 태국 국민들도 이미 오래 전부터 군부의 초헌법적 정치 개입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다는 의미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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