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戰史속살신성인

<25>학도의용군

입력 2005. 12. 2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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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대신 총…조국 위해 분연히 일어나

    “어머니, 지금 제 옆에는 학우들이 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 총을 들고 있습니다. 적병은 너무나 많으며 우리는 겨우 71명입니다. 어쩌면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상추쌈이 먹고 싶습니다. 아! 놈들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책 대신 총을 메고 계급도 군번도 없이 이름 모를 깊은 계곡에서 초연히 산화한 한 호국학도의용대의 부쳐지지 않은 편지 내용이다.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조국을 지키다 죽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삼았던 이들이 보여 준 살신성인의 거룩한 희생이 없었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도 물거품일지 모른다. 10대 중후반의 피끓는 애국 학도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한 성스러운 대열에 교복을 입은 채 참전했다.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시작된 6·25전쟁 당시 아군은 절대적인 전투력 열세로 밀리고 밀려 낙동강에 최후의 방어선을 구축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려다 숨져 간 못다 핀 영혼들, 오로지 국가에 대한 충성심 하나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30여만 학도의용군의 전과는 눈부시기까지 하다. 또 학도병들의 거룩한 희생이 없었더라면 오늘날 대한민국의 안위를 누가 보장해 줬겠는가.
    어린 학생들은 북한군이 기습 남침하자 즉시 “조국을 사랑하는 학도여! 조국의 운명은 여러분의 손에 달려 있다”고 궐기하고 “위기에 처한 조국을 애국 학도들이 구하자”고 외치면서 전국 학도들의 동참을 호소했다.최초 학도의용군 결성은 북한군 남침 직후 각 학교의 학도호국단 학생들이 국방부 정훈국장 이선근 대령을 찾아가 참전 결의를 알리면서 시작됐다.

    이들은 국방부 정훈국의 후원을 받아 학도의용군의 모체인 ‘비상학도대’를 발족시켜 신분증도 발부받아 최초 3개 소대로 편성됐으며 학병(學兵)이라는 헝겊을 가슴에 붙이고 싸우다 죽는 것을 최대의 영광으로 알았다. 최후의 방어선에 배치된 이들의 용맹성은 북한군에 위협적인 존재였으며, 이들은 조국을 위해 장엄한 죽음을 선택했다고 기록돼 있다.
    학도의용군은 전쟁이 발발한 이후 휴전이 조인될 때까지 육·해·공군과 유엔군에 예속돼 각종 전투에 참가했다. 특히 낙동강 최후의 방어선을 지키기 위해 45일 동안 피아간 혈전을 거듭할 때 이들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
    북한군은 유엔 증원군이 오기 전에 부산까지 점령해야만 했고 아군은 유엔 증원군이 올 때까지 마지노선인 낙동강 전선을 사수해야만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이때 학도의용군은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됐다. 이들은 비상학도대, 서울 학도포병대, 삼사단 학도의용군, 북진포병대 등 다양한 이름으로 활동했다.

    휴전까지 5만여 명의 대원이 직접 전투에 참전했고 약 27만 명의 대원이 치안 활동, 가두 선전, 후방 선무 공작 등을 통해 군을 지원했다. 그중 7000여 명이 꽃다운 나이로 조국을 위해 산화했다. 국내 학생 조직뿐만 아니라 재일 교포 민단 학생들로 구성된 재일 교포 학도의용군도 있었다.
    중동 전쟁이 발발하자 미국 유학중인 이스라엘 대학생들이 참전해 참애국심의 발로로 높게 평가됐듯이 피끓는 젊은 재일 학도 650여 명도 편안한 일본에서의 학창 생활을 버리고 학도의용군으로 참전, 용전분투했다.
    낙동강·다부동·영천·포항 등 국군 최후의 교두보에서 북한군의 진격을 늦추거나 방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학도병들은 우리의 대표적 지식층이었다. 오늘날의 대학생 수보다 전쟁 당시의 중학생 수가 훨씬 적었고, 초등학교 졸업생의 20%만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정도로 중학교 입학은 지금의 대학에 입학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중학교를 졸업하면 취직이 보장됐다. 당시 국민학교 교사, 군·면 공무원의 50%를 넘는 수가 국민학교 졸업자였다. 이런 이유로 당시 중학생들은 자부심과 긍지가 대단해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고 사회에 대한 봉사심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 남달랐다. 이들은 낙동강전선, 인천상륙작전을 비롯해 북진작전, 혜산진 전투, 흥남철수작전, 그리고 중동부 전선 전투 등 거의 모든 전투 지역에서 용감히 전투를 수행했다.
    이들의 살신호국정신은 공산 세력의 침략을 맨주먹 붉은 피로 막아 내겠다는 저항정신의 자발적 발로로서 비록 군번과 계급장 없이 싸우기는 했지만 애국심 발휘 면에서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을 정도로 숭고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학도의용군의 거룩한 희생정신에 삼가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며 만일 이들의 살신성인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존재는 이 지구상에서 사라졌을 수도 있었다. 당시 한국의 지식층이었던 학도의용군은 앞다퉈 6·25전쟁에 참전, 용전분투함으로써 위기에 처한 조국을 구하는 계기가 됐다. 그래서 학도의용군의 고귀한 희생정신은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중령 이준희 공군교육사령부·정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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