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戰史속살신성인

<21>한니발 장군

입력 2005. 11. 25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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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니발이 고대 도시 국가 카르타고의 군대를 이끌고 알프스 산을 넘었는데 이것은 고대 군사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위업으로 기록되고 있다.
    다시 말해 카르타고 군대가 설마 알프스 산을 넘어 공격해 올까 하고 로마군이 방심하고 있을 때 한니발은 이를 역이용, 추위와 눈사태를 이겨 내고 소규모 갈리아 부족과 싸우면서 보름 만에 알프스 산을 넘어 티치노 강변에서 로마군을 무찔렀다. 그래서 한니발은 실현 불가능한 전쟁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승리를 쟁취하는 ‘군사 전략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한니발은 B.C. 약 247년에 태어나 카르타고 귀족인 아버지로부터 강도 높은 전쟁 교육을 받았다. 고대 로마와의 제1차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의 카르타고군은 패배하고 말았다. 한니발은 이 전쟁 패배를 계기로 로마 제국에 대항,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겠다고 굳게 맹세했다.
    아버지와 매형 하스드루발의 뒤를 이어 B.C. 221년 26세의 젊은 나이로 에스파냐 주둔군의 총지휘관이 된 한니발은 B.C. 219년 로마군 점령 하의 에스파냐 도시 사군툼을 함락했다. 그리고 이듬해 에브로 강을 건넘으로써 제2차 포에니 전쟁(한니발 전쟁)이 발발했다.
    한니발은 로마군이 사용하는 전술에 일일이 대응하지 않으면서 곧바로 군대를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이러한 결정은 일찍이 그 어느 장군도 감행하지 못한 모험이었다. 다시 말해 코끼리 부대까지 포함한 대군을 이끌고 눈 덮인 알프스 산을 넘기로 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코끼리 몇 마리와 다수의 병사를 잃고 이탈리아로 내려온 한니발 군대는 보병 2만 명, 기병 6000명 가량이었다. 더욱이 로마군에 비해 수적으로 열세인 데다 에스파냐인·누미디아인·리비아인 등 여러 민족의 혼성 부대로 구성돼 있었다. 그러나 피레네 산맥과 험준한 알프스 산맥까지 넘는 동안 연대감이 쌓여 사기가 충천했다.
    B.C. 218년 12월 한니발의 카르타고군과 로마군은 티치노 강변에서 최초로 맞서 한니발은 승리를 거뒀다.
    한니발이 이끄는 카르타고군은 티치노 전투에 이어 벌어진 트레비아 강변의 전투에서도 대승을 거두고 B.C. 217년 봄 이탈리아 중부의 트라시메노 호숫가 전투에서 로마군을 거의 전멸시키며 계속 남하했다. 이 무렵 한니발은 연이은 로마군과의 전투에 몰두하면서 눈병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기도 했다.
    B.C. 216년 초여름 한니발은 남쪽으로 이동, 로마의 식량 보급 기지 가운데 하나인 칸나에 지역을 공격했다. 한니발의 전술은 여기서도 혁혁한 전과를 올려 로마군을 거의 섬멸했는데 이때 로마를 침공했다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칸나에 전투의 대승 후 한니발은 신중하게 로마 연합이 무너지기를 기다렸고 이 과정에서 로마는 내부적으로 시민들이 총단결, 군대를 재편하고 전쟁 비용을 조달했다.
    로마는 가능한 한 싸움에 나서지 않고 지연 작전을 쓰면서 한니발 군대의 지원 세력을 차단했다. 이로 인해 한니발은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최후의 격전인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의 전술을 응용한 스키피오의 책략으로 로마군에 패하고 말았다.
    카르타고는 제2차 포에니 전쟁의 패배 이후 로마와 강화 조약을 맺고 평화롭게 지내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한니발은 이에 응하지 않고 정부와 군부 내에서 로마와의 전쟁을 다시 모의했다. 그는 이 때문에 로마로부터 의심을 사고 자기 동포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다. 결국 로마 당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카르타고 정부는 한니발을 시리아로 추방하게 되며 그는 그곳에서도 반란을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만다.
    한니발은 그곳에서 자신을 잡으러 오는 막강한 로마 군대에 생포되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판단, B.C. 183년 독약을 먹고 70세를 일기로 자살했다.
    한니발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성은 무엇보다 실현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 전쟁을 실현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돋보이는 것은 조국 카르타고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바치는 그의 희생정신이었다. 한니발은 15년간 본국을 떠나 독자적 생존을 위해 정복 전쟁을 벌였으며 세균 감염으로 한쪽 눈을 잃었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역경을 극복했다. 특히 비굴함보다 용기 있는 죽음을 택한 그의 살신성인은 수천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후대에 높이 평가되고 있다.
    <중령 이준희 공군교육사령부·정치학 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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