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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표로 엮는軍 軍人 軍隊<7>군사 전략지 ‘진포’

입력 2005. 08. 1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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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 소개하는 전북 우표 전시회 기념 ‘기념통신일부인’의 진포 대첩비(2000년 6월 발행)는 고려 시대 왜구와 싸운 주요 전투 가운데 하나다. 진포는 현재 금강을 도계(道界)로 갈라진 전북 군산시와 충남 서천군 일대를 말한다. 진포는 고려 초부터 12창의 하나로 진성창과 함께 전라도의 조세를 운반하던 군사 전략지였다.
    고려 말인 1380년(우왕 6년) 8월 왜구가 500척의 선박을 이끌고 금강 하구로 침입, 해안 마을에 흩어져 약탈을 자행했다. 고려 조정은 심덕부·최무선 등 2명의 장군을 보내 왜구를 치도록 했다. 최무선 장군은 자신이 설계·감독한 병선 80여 척에 화통과 화포를 설치한 뒤 금강에 이르러 왜적 선단을 향해 일시에 화포를 쏘아 순식간에 불태웠다. 앞서 육지에 상륙해 약탈을 일삼고 있던 왜구는 같은 해 9월 이성계와 맞서 황산 대첩에서 완전 섬멸됐다.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우표 가운데 거란의 10만 대군을 무찌른 강감찬 장군의 귀주 대첩 우표도 있다. 거란은 993년에 1차로 고려를 침입했으나 서희의 담판으로 물러났다. 그러나 1010년에 2차 침입해 수도 개경을 함락시켰다. 나주까지 피신한 현종이 직접 거란 조정에 찾아가 머리를 숙일 것을 약속하자 거란은 이에 겨우 군사를 물렸다. 거란은 1018년 10만 병력을 이끌고 세 번째로 고려를 침입했다.
    현종은 강감찬 장군을 상원수로 삼아 소배압의 거란군을 대적케 했다. 강감찬 장군은 1차로 소배압이 백마산성 남쪽에 위치한 삼교천을 넘을 때 기습, 대승을 거둔 뒤 개경을 향해 남진하는 소배압군을 뒤에서 추격했다. 보급로를 차단당한 거란군은 청천강을 넘어 계속 남하했으나 자모산성에 대기하고 있던 고려 부원수 강민첨에 의해 연속적인 타격을 입고 신계에서 회군 길에 올랐다.

    이때 강감찬 장군이 귀주성 동쪽 벌판에서 철수하는 거란군을 공격, 거의 전멸시켰다. 귀주 대첩은 고구려 을지문덕 장군의 살수 대첩 이래 북방 민족과 겨뤄 승리한 가장 규모가 큰 대첩이다.
    한편 진포 대첩비를 소개하고 있는 기념통신일부인은 우체국에서 사용하는 7종류(호) 우표 가운데 6호에 해당되는 것으로 특정 사안을 기념하기 위해 발행된다. 우표 수집가의 중요한 취미 자료이며 초일봉투·초일엽서·맥시멈 카드 등에 날인한다.
    〈이영수 조각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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