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무기의일생

<34>M20 3.5인치 대전차 로켓

김병륜

입력 2005. 04. 16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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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인치 대전차 로켓을 최대한 빨리 한국으로 보내 달라.”
    6·25전쟁에 참전한 미 육군 24사단장 딘 소장과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1950년 7월 초순 워싱턴에 M20 3.5인치 대전차 로켓의 긴급 보급을 요청했다. 당시 참전 미 육군 부대들은 쓸 만한 대전차 무기가 없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2.36인치 대전차 로켓으로는 북한군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 육군이 출동하기만 해도 북한군이 겁을 먹고 후퇴할 것이라는 미군들의 기분 좋은 상상은 전차를 앞세운 북한군의 완강한 공세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미군들이 생각했던 유일한 해결책은 1950년 6월 개발이 끝난 3.5인치 대전차 로켓이었다. 3.5인치와 2.36인치 대전차 로켓은 기본적으로 동일한 성격을 가진 무기지만 구경이 큰 3.5인치 대전차 로켓의 장갑 관통 능력이 더 우수했다.
    그 무렵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개발은 끝났지만 양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던 상태였다. 하지만 맥아더 원수의 긴급한 요청에 미군 당국은 신속히 반응했다. 시제품이 미국에서 처음 생산된 것은 7월3일. 사격 지도 교관과 함께 시제품이 미국 캘리포니아 주 트래비스 공군 기지를 떠난 것은 같은 달 8일이었다.
    대전에 도착한 것은 10일, 긴급 훈련을 거쳐 미24사단 예하 보병중대의 화기소대에 대전차 로켓이 배치된 것은 12일이었다. 한국에 배치된 3.5인치 대전차 로켓이 최초로 전과를 올린 무대는 대전 전투였다. 7월20일 밤 붕괴된 방어선을 수습하기 위해 전투 현장을 시찰하던 미24사단 34연대장 뷰챔프 대령이 북한군의 T-34 전차와 조우한 것.
    어둠 속에서 T-34 전차는 기관총을 난사했고 뷰챔프 대령이 탄 지프에 불이 붙었다. 하지만 군인정신이 투철했던 뷰챔프 대령은 사단 공병대대의 3.5인치 대전차 로켓조를 이끌고 용감히 응전했다. 단 한 발에 T-34 전차가 파괴되면서 화염이 치솟았다. 3.5인치 대전차 로켓이 T-34 전차를 파괴할 수 있음을 실전에서 최초로 증명한 것이다.
    이후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한국군과 미군이 두려움 없이 T-34 전차를 상대할 수 있는 든든한 동반자가 돼 주었다. 대전 전투의 최후 순간 딘 소장은 직접 3.5인치 대전차 로켓으로 적 전차를 공격, 파괴하는 전과를 거두기도 했다.
    한국군이 3.5인치 대전차 로켓으로 최초의 전과를 거둔 것은 1950년 8월 대구 북방 가산 전투에서였다. 8월 초 한국 육군1사단은 미군으로부터 3.5인치 대전차 로켓 3문을 최초로 인수했다. 1사단은 예하 12연대에 사수·부사수·탄약수 2명 등 4명으로 구성된 대전차특공조 세 개를 편성, 일주일 동안 특별 훈련을 거쳐 8월9일 최초로 실전에 투입했다.
    12명의 대전차특공조 대원은 특공대장 김성룡(金成龍) 대위의 지휘 아래 대구 북방 석적부락 부근에서 단숨에 적 전차 4대를 파괴하고 1대를 노획했다. 개전 이래 끊임없이 한국군을 괴롭혀 온 전차 공포증을 날려 버린 통쾌한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20여 년 뒤인 1971년,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박정희 대통령이 추진한 번개 사업의 일환으로 국산화됐다. 이토록 파란만장한 역사를 가진 3.5인치 로켓도 1980년대 이후 점차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66mm LAW(경대전차 무기) 등 신형 대전차 무기의 출현으로 3.5인치 대전차 로켓은 예비군 무기로 전환된 것이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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