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무기의일생

<33>57mm M1 대전차포

김병륜

입력 2005. 04. 02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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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전쟁의 첫날인 1950년 6월25일, 강원도 춘천 소양강 입구 옥산포 부근. 숲속에 잠복하고 있던 육군6사단 7연대 대전차포중대 2소대(소대장 沈鎰·중위)의 57mm 대전차포가 불을 뿜었다.
    57mm 대전차포의 1탄에 30m 앞까지 접근했던 북한군 Su-76 자주포의 무한궤도가 날카로운 쇳소리를 내며 파괴됐다. 또 다른 적 자주포 1대도 2탄에 측면 장갑이 관통되면서 멈춰 섰다.
    그 순간 대기하고 있던 6사단 7연대 육탄특공대원들이 달려들어 수류탄을 적 자주포 내부에 던져 넣었다. 유폭을 일으키며 자주포가 파괴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개전 초기 T-34 전차와 함께 무적의 위세를 자랑하던 적 자주포의 기세를 꺾어 버린 결정적 쾌거였다.
    대전차포중대의 활약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26일 소양강 입구 삼거리 부근에서도 57mm 대전차포로 적 자주포 2대를 기동 불능 상태로 만들어 버렸다. 28일에는 말고개에서 6사단 2연대 57mm 대전차포중대와 19연대 육탄특공대의 협공으로 적 자주포 10대를 파괴했다.
    이러한 대전차포중대의 활약은 춘천지구 전투에서 6사단이 성공적인 지연전을 펼치는 데 결정적인 밑거름이 됐다. 당시 대전차포중대가 보유한 대전차포의 정확한 제식명은 57mm M1 대전차포(對戰車砲·Antitank Gun).
    우리나라에서 이 대전차포를 최초로 보유한 것은 1948년 무렵이다. 1949년 주한미군이 철수할 당시 대전차포 117문과 각종 탄 4만408발을 한국군이 추가로 인수하기도 했다.
    지금은 대전차 미사일과 로켓·무반동총 등이 전차를 파괴하는 대전차 무기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무렵만 해도 대표적인 대전차 무기는 대전차포였다.
    대전차포는 말 그대로 전차를 전문적으로 공격하는 야포를 의미한다. 대전차포는 일반적인 곡사포와 비교, 포탄의 속도(포구속도)가 매우 빠르고 탄도가 비교적 수평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사용하는 탄종도 철갑탄 등 전차의 장갑 관통에 적합한 운동에너지탄이다.
    초창기의 대전차포는 구경 37mm급이 주류였다. 하지만 전차의 방어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되자 37mm급의 대전차포로는 전차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대전차포의 공격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보다 구경이 큰 57·76·88·127mm의 대전차포가 속속 개발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미국의 57mm M1 대전차포도 이런 초창기 대전차포 발달 과정에서 나온 산물 중 하나다. 이 대전차포는 영국의 6파운드 대전차포를 약간 개조, 1941년 11월 제식화한 것이다.
    사실 57mm 대전차포는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중 그 가치를 상실한 무기였다. 당시 최신예 주력 전차를 격파하기에는 관통력이 너무 약했던 것. 6·25전쟁 당시에도 T-34 전차를 상대해 큰 활약을 펼치지 못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심지어 전차보다 훨씬 방어력이 약한 Su-76 자주포 상대에서도 원거리에서 제대로 장갑을 관통하지 못했다. 때문에 우리 육군이 3.5인치 대전차 로켓을 도입한 후 57mm 대전차포는 일선에서 점차 사라져 갔다.
    결국 6·25전쟁 당시 춘천 전투에서 육군6사단 대전차포중대의 눈부신 활약은 57mm M1 대전차포의 뛰어난 성능 때문이라기보다 장병들의 감투정신에 힘입은 바 컸다고 할 수 있다.
    무기 체계의 성능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승패를 좌우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보여 주는 사례인 것이다.

    김병륜 기자 < lyuen@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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