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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명장 열전<62>표트르 大帝(러시아 황제) -하-

입력 2003. 11. 13   00:00
업데이트 2013. 01. 05   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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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트르 대제는 민간부문 근대화와 함께 러시아의 안보를 지키고 국경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해군과 육군을 창설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모지였다시피한 해군력의 창설에서부터 시작, 조선 캠페인을 벌였다. 그는 이때 50척의 현대적 전함과 700척의 지원함정을 건조했다. 그 결과 러시아는 곧 발틱 해안을 장악하고 대서양에서 유럽 강국들과 필적할 만한 해군력을 갖추었다.

    표트르 대제는 처음으로 징병제도를 도입했다. 이 징병제도에 따라 20 세대가 한 사람의 군인을 내도록 했다. 오늘날 개병제도의 초기 형태인 셈이다. 그는 러시아 육군 발전에 몰두한 나머지 새로 태어난 자기 아들조차 미래의 신병이 될 것으로 보고 기뻐했다.

    러시아 육군이 25만 명 이상으로 성장하자 표트르 대제의 서구 고문관들은 군사력을 재편하고 현대 군사훈련 방법을 도입했다. 표트르 대제는 러시아 자체 공장에서 생산한 새로운 군복과 가장 현대화된 부싯돌 머스켓총, 그리고 대포들을 지급했다. 그는 새로운 장교 훈련제도를 도입하고 승진도 군인들의 사회적 신분보다 능률과 업적을 기준으로 삼았다.

    표트르 대제는 1700년 스웨덴에 선전포고를 했는데 이 전쟁이 북방전쟁으로 확대돼 무려 20여 년간 계속됐다. 그의 신생 군대는 나르바 전투에서 초전에 패배했으나 1709년 폴타바 전투에서 결정적 승리를 굳힐 만큼 성숙해졌다.

    그후 몇 차례 지상군 승리와 한고 전투에서 스웨덴 해군이 패배한 후 전쟁은 1721년 스웨덴이 강화를 제의하기까지 소강상태를 유지했다. 그후 스웨덴은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비보르크 이북 발틱 해안을 러시아에 할양하고 이 전쟁은 끝났다.

    20여 년간의 긴 전쟁 동안에도 표트르 대제는 군대의 현대화를 계속 추진했고 국내에서도 다방면에 걸쳐 발전을 거듭했다. 그는 1712년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수도를 옮겼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유럽을 향해 러시아의 더욱 가까운 창문 구실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1708년 전투규칙과 1716년 군사법전을 포함, 5~6권의 책을 저술했다. 이 책들은 군사훈련과 작전 비전을 표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표트르 대제는 통합사령부 구조를 보장하기 위해 1718년 군사대학교를 창설했다.

    이런 일련의 혁신과 이에 따른 모든 발전은 물론 엄청난 비용을 요구했다.

    표트르 대제는 비용 조달을 위해 중(重)과세를 했다. 그래서 수 차례 반란이 일어났고 표트르 대제는 이를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반대파 지도자들을 처형했다. 1718년 그는 자신에게 대항, 전복 음모에 가담한 자기 아들도 체포해서 고문했고 아들은 결국 감옥에서 사망했다.

    표트르 대제는 1725년 부하들에 대한 습관적 헌신의 하나로 물에 빠져 익사할 위험에 처한 병사들을 구출하기 위해 핀란드의 어름물에 첨벙 뛰어들었다. 그 결과 그는 저체온증에 걸려 고생하다가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그는 53세의 나이로 그해 2월8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표트르 대제의 조직과 행정기술은 자신의 열성적 지도력에 힘입어 러시아를 세계적 강대국 지위로 비약시킨 군사력을 키워냈다. 그가 제정 러시아에 남긴 유산은 러시아가 그후 2세기 동안 유럽의 지도국가로 살아 남을 수 있게 해주었다. 제정 러시아의 소멸은 외부공격 때문이 아니라 1917년 내부의 볼셰비키혁명 때문이었다.

    표트르 대제가 제도화한 개혁과 조국 근대화 무대를 마련하지 않았던들 러시아는 당시 영국·프랑스·프러시아와 동등한 국가적 지위를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또 그의 러시아 근대화 공로가 없었다면 구소련이 제2차 세계대전과 그 후의 동서 냉전 때 과연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강대국이 될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1991년 소련이 자본주의로 체제 전환 후 비교적 단기간 내에 오늘의 러시아로 복원할 수 있었던 것도 표트르 대제가 축적한 튼튼한 국가적 토대 덕택이라고 할 수 있다.

    〈남북전략연구소장 여영무 www.libertyclu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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