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그림과날씨

동지(冬至)와 새알심

공군73기상전대 중앙기상부장 반기성 대령

입력 2001. 12. 23   00:00
업데이트 2013. 01. 0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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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저 하나만 더 주세요.” “야가 왜 이려, 이건 나이 수(數)대로 먹는 겨.” 동지 때가 되면 팥죽에 들어 있는 새알심 하나를 더 얻으려고 떼를 쓰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나보다 새알심 두 개를 더 먹는 형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밤이 가장 긴 날이라 그랬는지 팥죽을 먹고 조금만 지나면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그러면 커다란 놋쇠 양푼에 담아 장독대에 내놓은 팥죽을 몰래 퍼다 먹곤 했는데, 사르르 얼음이 언 팥죽과 함께 언 새알심을 입안에서 녹여 먹던 그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환상적 추억이다.

그림은 전남대 미대를 나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황순칠이 `세시풍속 24절기전'에 출품했던 `동지(冬至)-농경도'다. 그는 빛고을 남도에서 잊혀져 가는 우리네 삶의 고향인 농촌의 정경만을 묵묵히 그리고 있다. 그의 그림에 단골로 등장하는 마을 어귀의 고목, 옹기종기 모여있는 초가집, 마을을 둘러싼 둥그런 길,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 텃밭과 굴곡진 밭이랑은 이 그림에서도 빠짐없이 등장하여 이웃간의 정이 넘치던 우리네 고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건축용 돌가루에서 빚어지는 울퉁불퉁한 질감과 갈필법(먹을 적게 묻혀 톡톡 두드리는 한국화의 기법)의 독창적 기법은 여기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세속의 삶이 지치고 힘들 때 고향으로의 회귀 본능은 그리움 그 이상이다. 절기상으로는 겨울의 한복판이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봄날의 꿈처럼 고향의 포근함 속으로 아련하게 빠져드는 것 같다.

“찬 서리/ 나무 끝을 나는 까치를 위해/홍시 하나 남겨 둘 줄 아는/조선의 마음이여”(김남주의 시 `옛 마을을 지나며' 중).  까치의 겨울 양식까지도 세심하게 배려해 주던 우리 민족은 참으로 정 많은 민족이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조상들의 넉넉했던 그 마음 씀씀이가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공군73기상전대 중앙기상부장 반기성 대령〉

공군73기상전대 중앙기상부장 반기성 대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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