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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욱 기고] 지울 수 없는 창공 수호의 DNA

2018. 04. 14   14:42 입력

 



안타까운 장면이었다. 지난 4월 5일 우리 공군의 정예 F-15K 전투기가 추락해 소중한 조종사 2명이 순직했다. F-15K 기종에서 처음 추락사고가 있었던 것은 2006년 6월 7일이었다. 이후 12년간 최고의 조종사들이 최고의 기량을 유지하며 우리의 하늘을 지켜왔지만,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공군은 전우의 죽음에 비통해했고, 갑작스러운 비보에 국민은 애도했다.

공군은 사고 직후 비행금지명령을 내렸다.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를 추가적 피해를 막으려는 조치다. 그렇게 주말 사이 묵묵히 스스로 태세를 점검하면서 공군은 두 전우의 안장식까지 마쳤다. 그리고 지난 4월 10일 사고 기종인 F-15K 이외의 전 기종이 비행을 재개했다. 그 첫 비행으로 이륙한 KF-5F 제공호에는 이왕근 공군참모총장이 탑승했다. 공군의 리더가 직접 첫 비행에 나서면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조국의 하늘은 지켜야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이는 인류의 가장 치열한 항공전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의 본토방공전(Battle of Britain)을 생각나게 한다.

1940년 본토방공전에서 영국 공군의 피해는 막대했다. 3000여 명의 조종사가 참가했는데, 544명이 전사했다. 이후 5년간 전쟁에서 사망한 조종사가 791명임을 생각하면 엄청난 희생이었다. 전투 간에 조종사의 기대수명은 4주에 불과했다. 그러나 영국 공군은 치열한 전투에서 나치 독일 공군의 항공기 2600여 대를 격추했다. 약 4개월간의 치열한 전투에도 성과가 없자, 독일은 영국이 난공불락임을 깨닫고 관심을 소련으로 돌렸다. 조종사들의 치열한 헌신이 없었다면 영국이란 나라는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당시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본토방공전이 한창이던 8월 20일 의회연설을 통해 조종사들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인류의 전쟁 역사상 이토록 많은 사람이 이토록 소수의 사람에게 이토록 큰 도움을 받은 일은 없을 것이다.”

우리 공군이 그래 왔다. 국가와 국민을 지키기 위한 소수 정예의 사명감을 잊지 않았다. 창군 후 전투기는커녕 훈련기 20여 대가 전부인 상황에서 6·25전쟁을 맞았다. 우리 공군은 좌절하지 않고 훈련기로 육탄 공격에 나섰다. 후방석에 정비사가 탑승해 급조폭탄을 던지면서 공산군의 침략에 맞섰다.

이와 함께 미군 전투기 10대를 인수해 운용하기 위한 바우트원 계획을 수행하기 위해 조종사 10명이 일본으로 파견됐지만, 기종전환 훈련을 받을 시간은 1주일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급박한 전황을 전해 들은 보라매 10명은 용감하게 대한해협을 건너와 곧바로 참전했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조국의 하늘만큼은 내줄 수 없다는 신념의 강한 DNA가 우리 공군에 남아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

비록 두 전우가 안타깝게 산화했지만, 우리 공군은 슬퍼하고 있을 여유가 없다. 오랜만에 찾아온 대화 분위기를 보장하는 것은 강한 국방이며, 대한민국 국방의 전략적 능력은 현재 상당 부분 공군의 몫이다. 그래서 아픔을 뒤로하고 오늘도 우리의 보라매들은 날아오른다. 그들의 신념과 용기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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