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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군사 >대한민국 군함 이야기

강력한 소형정, 상륙함정 보호+적 공격 ‘동시에…’

<20> LSSL급 대형 상륙지원정
2018. 09. 12   15:19 입력 | 2018. 09. 13   11:14 수정

 

 

2차 세계대전 시 태평양 전선서 맹위 떨쳐

미 해군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상륙작전을 전개하면서 큰 장애물을 만났다. 아군 전투함과 항공기가 상륙지역에 포격·폭격을 가한 후 상륙함정이 돌진하게 되면, 그때 적의 공격을 받아 적지 않은 인명 피해가 났던 것. 이에 미 해군은 해안으로 돌진하는 상륙함정을 보호할 수 있는 함정을 건조하기로 했다.

대형 전투함과 달리 해안 가까이 접근이 가능하고, 상륙함정을 보호하는 동시에 적을 공격할 수 있는 함정!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로켓’이었다. 미 해군은 상륙정을 개조해 로켓을 장착했다. 이 함정이 LSSL(Landing Ship Support Large)급 대형 상륙지원정이다.

 

LSSL-110 영일만정.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해군은 3개 조선소에서 130여 척의 LSSL급을 건조했다. 이 함정들은 최초 LCS(Landig Craft Support)급 상륙지원정으로 분류됐다가 나중에 LSSL급으로 재분류됐다.

LSSL급은 ‘강력한 소형정(Mighty Midgets)’으로 불릴 만큼 태평양 전선에서 맹위를 떨쳤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병력과 예산이 감축되면서 미국·일본 등지에 불가동 상태로 방치됐다.


1952년 美 오리건주서 LSSL급 2척 인수

한국 해군은 6·25전쟁 중 미국으로부터 다양한 함정과 장비를 양도받았다. LSSL급도 그중 하나다. 박옥규(중장 예편·2대 해군참모총장·1971년 작고) 대령을 비롯한 인수 요원들은 1952년 1월 21일 미국 오리건 주 에스토리아에서 LSSL급 2척을 인수했다. 이들 함정은 1952년 5월 3일 영흥만정(LSSL-107)과 강화만정(LSSL-108)으로 명명됐다.

당시 인수 요원들은 언어로 인한 에피소드가 많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Hot sauce’ 사건(?)이었다. 장교 20명과 병사 200명으로 구성된 한국 해군 인수 요원들은 본국으로 돌아가는 미군과 함께 시애틀까지 이동하기로 했다. 미 해군 수송함에 편승한 인수 요원들은 멀미에는 끄떡없었지만 식사 시간이 고역이었다. 영어로 음식을 주문해야 했기 때문이다. 영어에 능숙하지 못했던 수병들은 영어를 조금 할 줄 아는 수병이 음식을 시키면 모두 그를 따라 했다. 그 수병이 ‘Fried egg’ 하면 이구동성으로 ‘Me too’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수병이 ‘Hot sauce’를 주문하자 나머지 수병도 ‘Hot sauce’를 외쳤고, 그날 한국 수병들은 미군 1600명이 6개월 동안 먹을 Hot sauce를 단 한 끼에 해치우는 기록을 세웠다.

LSSL-107 영흥만정.


최전방 경비 및 적 진지·포대 등 파괴 임무

한국 해군은 1952년 10월 20일 일본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에서 2척의 LSSL급 함정을 인수해 보성만정(LSSL-109)과 영일만정(LSSL-110)으로 명명했다.

이로써 한국 해군은 LSSL급 함정을 4척 운용하게 됐으며, 연안의 만(灣)을 함명으로 제정했다.

LSSL급은 6·25전쟁 중 해군1함대에 예속돼 최전방 해역에서 경비 임무와 적 진지 포격 임무를 수행했다. 1952년 7월 11일 초도 근해 경비작전에 투입된 영흥만정은 적 진지를 발견하고 포격을 가해 참호 2개소와 포대 3개소를 파괴했다. 1953년 2월 22일에는 장산곶 남방 적진에 포탄을 퍼부어 적을 섬멸했다.

강화만정은 1952년 7월 27일 초도 근해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영국 함재기의 추락을 목격하고 조종사 2명을 구조했다. 1953년 7월 14일에는 황해도 은율군 인근까지 접근해 적 진지에 로켓포 사격을 가했다.

보성만정은 1953년 3월 5일부터 31일까지 적 진지를 공격해 토치카 2개소와 막사 5개동을 파괴했다. 영일만정은 1953년 2월 23일 고저포 근방 해상에서 적 진지에 포격을 가해 3개소를 무력화했다. 사진=해군본부 제공



[전문가 해설]
한국서 진가 발휘…피난민 수송·유격대 지원 등 완벽 수행

 

 

임성채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

우리 해군은 6·25전쟁 기간 중 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건조·운용했던 대형 상륙지원정(LSSL) 4척을 무상으로 인수했다.

이 함정들은 LCU·LCI·LSM·LST 등 상륙함의 취약점을 보강하기 위해 4.5인치 로켓 발사대를 장착했다.

미국 오리건 주에서 인수한 LSSL-107·108정은 1952년 5월 3일 부산에서 명명식 후 제1함대 서해전대에, 일본 요코스카에서 양도받은 LSSL-109·110정은 1953년 1월 10일 진해에서 함명을 부여받은 후 제1함대 동해전대에 예속됐다.

4척의 LSSL급은 최전방 도서 근해에서 임무를 수행했다. 막강한 화력을 활용해 적 포대와 병력 집결지, 군수품 차량 등에 포격을 가해 큰 전과를 거뒀다. 더불어 아군 해군의 PT급 어뢰정과 유격대를 엄호하는 작전도 병행했다.

LSSL급은 5인치 로켓 발사대를 장착한 PT급 어뢰정보다는 속력이 느리고, 미국의 국방 예산 절감 등으로 불가동 상태에 있었지만 한국 해군으로 양도된 후 진가를 발휘했다.

특히 PT급 어뢰정이 맡을 수 없었던 피난민 수송, 유격대 지원, 물자수송 등을 완벽히 수행했다.

이러한 성과에는 초대 함장으로 복무했던 이성호(중장 예편·5대 해군참모총장) 중령, 정긍모(중장 예편·3대 해군참모총장·1980년 작고) 소령, 현시학(소장 예편·1989년 작고) 소령, 유관식(해병 준장 예편·2009년 작고) 대위의 지휘 능력이 단단히 한몫했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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