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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군사 >정호영의 역사소설 광해와 이순신

왜군, 진주성 공격을 시작하는데…

제7장 분조 조선군의 반격 (93회)
2018. 05. 17   15:18 입력



왜군 연합부대는 1차 공격 목표로 진주를 택했다. 이순신 수군의 본영인 전라도 여수를 침공하기 위해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곳이 진주였다. 왜군은 9월 24일 김해를 출발했다.

각 지역의 조선군은 대규모 왜군 부대가 쳐들어오자 와르르 무너졌다. 왜군은 27일 창원을 점령했다. 이어 10월 2일 함양을 거쳐 5일에는 진주 외곽까지 도달했다.

수만 명의 왜군이 거대한 태풍처럼 몰려오자 진주가 무너지는 것은 시간문제처럼 보였다. 그러나 진주에는 김시민이라는 뛰어난 지휘관이 있었다.

진주목사 김시민은 휘하에 3000명이 넘는 정예 병력을 보유하고 왜군과의 일전을 별렀다. 8척 거인으로 39세였던 김시민은 본래 선비 집안 출신이었다. 그러나 25세에 무과를 거쳐 무인의 길로 들어선 전형적인 장수였다.

김시민은 대규모 왜군 병력이 쳐들어오고 있다는 보고를 받고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런 자신감은 전쟁을 지휘하는 분조로부터 귀중한 정보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황해도 연안에서 이정암과 의병들이 공성전을 벌여 왜군의 대규모 정예부대를 격파했다는 소식이 그것이었다. 분조에서는 왜군의 장단점과 공성전 승리 비결을 자세히 알려줬다.

김시민이 이끄는 병력은 황해도의 이정암이 왜군과 싸우기 위해 이곳저곳에서 모은, 급조된 의병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 전란 초기부터 피와 땀을 같이 흘리며 일사불란하게 손발을 맞춘 정예 강병이었다. 인근 곤양군수인 이광악이 100명을 이끌고 합세해 병력은 총 3800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이순신의 수군 다음으로 조선에서 가장 강력한 관군부대였다.

김시민은 이정암이 황해도 연안에서 왜군을 물리친 전투 내용을 다방면으로 분석했다. 무엇보다 유명무실한 조정과 달리 세자를 중심으로 한 분조가 버팀목이 되어 응원하고 있다는 점이 마음 든든했다.

6일 아침이 되자 왜군들은 사방천지를 뒤엎을 만큼 엄청난 병력으로 진주성 앞에서 위세를 떨쳤다. 그들은 들판 가득 깃발을 나부끼며 전투 진형을 갖추었다. 해가 중천에 뜰 무렵이 되자 공격이 시작됐다.

김시민은 진주성 밖에서 잘 보이는 곳에 큰 깃발을 세우고 장막을 친 다음 군사 복장을 한 남녀노소 백성들을 배치했다. 왜군이 볼 때 수만의 조선 군사들이 수비에 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였다.

“탕, 타당.”

함성과 함께 1000여 명의 왜군들이 대형을 갖춰 조총사격을 했다. 요란한 총소리가 천지를 쩌렁쩌렁 울렸다. 왜군의 전형적인 초기 공격 형태였다. 그동안 숱하게 왜군과 싸워본 김시민과 병사들은 별다른 동요를 보이지 않았다. 그저 성 위에서 힐끔 내려다볼 뿐 미동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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