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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군사 >정호영의 역사소설 광해와 이순신

제4장 도망치는 임금(45회)

2018. 02. 12   14:16 입력


“죄를 균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말씀은 지극히 공변됩니다만, 이산해는 오랫동안 인심을 잃었고 유성룡은 모든 사람이 존경하는데 함께 파직을 하면 민심이 크게 놀랄 것입니다.”

사간 이곽도 말을 거들었다.

“파천 논의는 영상이 한 것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습니다.”

사간이란 자리는 대궐에서 임금을 비롯해 조정 대신들의 말을 기록하는 직책이었다. 그런 그가 선조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에 제동을 걸었다. 그러나 선조는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맞받아쳤다. 오히려 반격의 고삐를 조였다.

“군사 문제를 완만히 하여 실패시킨 죄는 유성룡이 더 무겁소.”

선조는 전란의 근본 원인을 임금인 자신의 탓보다 엉뚱하게 유성룡의 탓으로 돌렸다. 대신들은 기가 막혀 제대로 말을 하지 못했다. 유성룡을 눈에 가시처럼 여기던 선조는 오기를 부리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쨌든 변란에 대응하지 못하고 적의 칼날을 받게 한 죄는 대신이 함께 져야 하오. 미리 막지 못하고 적으로 하여금 마치 무인지경을 들어오듯 하게 했으니 대신들이 어떻게 죄를 면할 수 있겠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유성룡 혼자 그 죄를 받아야 하오. 민폐가 된다고 하여 예비하지 않아 방비가 허술하게 만든 것은 모두가 유성룡의 죄요.”

선조는 완강했다. 여기서 물러나면 임금인 자신이 허수아비가 될 것을 우려한 처절한 저항이었다. 비록 억지였지만 ‘파직’이라는 말이 나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유성룡은 하루 만에 영의정 직에서 파직됐다. 또한 겸임하던 군무 총책임자인 도체찰사 자리도 물러나게 됐다. 파천 길에서 유성룡의 파직은 전란 극복의 희망마저 짓밟아버리는 암울한 조치였다.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임금에게는 앓던 이가 빠져 개운하다는 감정이 더 앞섰다.

조선을 침공한 뒤 파죽지세로 북상한 왜군은 도성인 한양을 눈앞에 두고 갈등을 벌였다. 조선의 임금을 중심으로 강력한 방어막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었다.

5월2일, 왜군의 선발인 소서행장의 부대는 도성이 멀지 않은 망우리 고개에서 상황을 관망했다. 멀리 도성의 곳곳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 것이 보였다.

“틀림없이 조선군이 도성 부근 어딘가에 매복하고 있을 것이다. 확실히 살펴라”

소서행장은 도성이 코앞에 다가오도록 조선군이 보이지 않는 것에 의구심을 품었다. 자국에서의 전쟁은 적의 도성이 점령되면 적장은 항복하거나 할복하면서 싸움이 끝났기에 조선이 도성을 쉽게 버리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왜군의 정찰부대는 한양 성곽 8개의 문 가운데 동쪽에 있는 문인 흥인문(오늘날 동대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보고도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조선군의 유인작전에 걸려들 것만 같아 두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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