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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 국방광장] 역사의 교훈으로부터 오늘을 답하다

2018. 04. 17   16:55 입력




인조 15년(1637년) 유난히도 추운 병자년, 남한산성의 인조를 구하기 위해 경상 지역과 충청 지역에서 4만여 명의 군사가 일주일을 걸어서 지금의 경기도 광주의 쌍령이라는 고개에 진을 치고 청나라군과 대치했다. 임진왜란 당시보다 훨씬 개량된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은 쌍령의 좌측에 경상좌병사 허완이, 우측에는 경상우병사 민영이 이끌면서 각각 일전을 준비했다.

그런데 청나라군 기병 300여 명이 조선군의 진 배후로 기습공격을 해왔다. 조총을 제대로 쏘기 위해서는 사거리를 고려해 적들을 충분히 근접시킨 후 조준사격 해야 했지만, 조선군은 당황한 나머지 적을 보자마자 마구 쏘아댔고 탄약이 떨어지자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나마 화약을 가진 자는 사격중지를 외쳐도 무서워 사격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4만여 명 중 절반의 병사가 서로 도망치려다 아군에 깔리고 밟혀 죽었다. 결과적으로 이 전투는 청나라 기병 300여 명에게 조총으로 무장한 조선군 4만여 명이 참패한 비극의 역사로 남아있다.

우왕 6년(1390년) 왜구를 태운 500여 척의 배가 금강 하구 진포(서천)로 쳐들어왔다. 그동안 80여 년 가깝게 왜구들은 경상·호남·충청 일부까지 출몰해서 식량을 빼앗고 방화를 자행하면서 양민과 어린아이들을 대거 살육했다. 특히 왜구들은 2~3세 된 어린아이의 배를 갈라 쌀과 술을 넣고 제물로 삼아 제사까지 지냈다고 『고려사(高麗史)』는 전하고 있다. 왜구들이 저지른 살인과 만행은 경상·전라·충청의 삼도를 폐허로 만들었고, 이제는 대담하게도 고려의 세금을 거두는 조운선을 습격해 사실상 국가 통제력이 상실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이러한 고려 말의 국가 위기에서 최무선은 당시 중국만이 만들 수 있는 화약 제조법을 알아내 왜구의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프로젝트에 나섰다. 최무선은 나라를 구하기 위해 자기의 삶을 화약 발명에 걸고 각고의 노력 끝에 중국 사람 이원의 도움으로 화약 제조법을 알아내게 됐다. 그리고 수차례 조정에 건의한 끝에 화통도감을 설치하고 여기서 화약과 18종의 화약 무기를 개발했다. 드디어 1390년 진포에서 자신이 만든 화약과 화약 무기로 왜구 함선 전부를 격파해 지루한 왜구 침입에 종지부를 찍었다.

어떤 위기가 발생하면 국민은 군대만 바라본다. 그래서 그때를 위해서라도 항상 준비하고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 오늘 우리가 쌍령전투의 망령이 되살아나지 않도록 무적의 전사를 키우면서 또한 고려 말 왜구의 침입에 화약 무기를 만들어서 승리했던 것처럼 한반도 안보 위협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게임체인저를 위해 숱한 밤을 새워야 할 사명이 있다. 오늘 아침 문득, 쌍령전투와 진포대첩이 겹쳐지면서 다시금 절실하게 스스로 군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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