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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선 병영칼럼] 공감-우리를 구원하는 마지막 힘

2018. 09. 12   16:35 입력




영화 ‘시(詩)’는 시를 쓰고 싶어 하는 할머니 이야기다. 할머니 미자는 평생소원이었던 시를 쓰고 싶어서 동네 주민센터 문학강좌에 등록한다. 선생님은 할머니에게 숙제를 내준다. 시를 잘 쓰고 싶으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자알--유심히 보라고 말이다. 그래서 할머니는 집 앞의 하늘과 길가의 꽃과 도도한 강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래도 시가 써지지 않아 괴로워하던 차, 얼마 전 강물에 떠내려온 익사체가 동급 남학생들에게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해 자살한 여중생으로 밝혀지고, 그 주범으로 할머니의 손자와 손자의 친구들이 지목된다. 어떻게든 사건을 은폐하려는 학부모들과 학교, 심지어 그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까지 변심하고 죽은 여중생의 엄마마저 딸의 죽음을 돈과 맞바꾸려 할 때, 할머니는 그 죽은 여중생을, 그 여중생의 입장을, 그 아이의 마음을, 그 아이의 고통을 자알--유심히 바라보기 시작한다.

무언가를 ‘유심히 본다’는 것은 그 대상을 이해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상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같이 느끼려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공감(共感)’이라고 부른다. 이 공감능력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랑’보다 위대하다. 왜냐하면 그 대상이 내 가족, 내 애인, 내 자식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고, 지구 상의 모든 동식물, 모래 한 줌, 풀 한 포기까지 포괄할 수 있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기심 때문에 ‘공감’보다는 ‘분리’를 택한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쟁에 고통받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처럼 느껴졌다면 애초에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그 수많은 플라스틱을 바다에 버려 바다거북의 목을 죄고, 고래의 배를 찢어놓을 수 있었을까? 지구와 인류가 위협받는 것은 바로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너와 내가 하나가 아니라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가 아니라는 이 분리의식 때문이다. 이에 이창동 감독은 고작(?) 시를 쓰고 싶어 하는 할머니 미자를 통해 이 시대의 ‘공감’을 얘기하고 있다. 그것은 강자가 약자를, 가해자가 피해자를, 권력자가 힘없는 자들을 이해하는 방법이다.

지난여름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만난 한 미국인 부자(父子)가 내가 사우스 코리아에서 왔다니까 “그럼 넌 강북에서 왔니? 강남에서 왔니? 한강을 중심으로 남과 북으로 나뉜다는데 넌 어느 쪽이니?”라고 물었다. 한국에서 1년을 살아 잘 안다는 아들이 싱글거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당했다. 대체 이 아들은 자기 아버지에게 한국에 대해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폭포, 그리고 언제 곰이 나타날지 모르니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울창한 숲 속 한복판에서 난 내가 강북이냐 강남이냐를 대답해야만 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래서 대충 얼버무리면서 인사를 하고 재빨리 돌아섰다. 그들이 넌 대한민국에서 건물주냐 세입자냐? 고향은 동쪽이냐 서쪽이냐? 넌 부자냐 가난하냐? 종국엔 넌 갑이냐 을이냐?를 물을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 가을! 우리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나보다 어렵고 힘든 사람들에게 조용히 공감해볼 일이다. 공감을 통한 사회적 연대야말로 그 사회를 진정으로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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