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 해군·해병대

‘필승의 DNA’ 한국 해병대 67년 신화는 계속된다

맹수열

입력 2016. 04. 17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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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창설67주년 / 창설기념식 열고 전 장병 조국수호 결의…핵심가치상 유공자 포상




조국수호의 최선봉에서 활약하면서 수많은 신화를 창조해 온 ‘무적 해병대’가 67번째 생일을 맞았다. 적에게는 ‘공포의 대명사’로, 우리 군에는 ‘승리의 상징’으로 각인된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창설된 이래 공세적 기질을 바탕으로 부여된 임무를 완벽히 수행하는 국가전략기동부대가 됐다. 해병대는 평시 민간지원작전, 평화작전, 국지도발 대비작전을 수행하는 다목적 신속부대로 활동하는 한편, 전시에는 최전방에서 전시 상륙작전, 지상작전, 안정화작전 등을 이끄는 결정적 임무수행부대로 ‘전승의 신화’를 쓰고 있다.

‘해병대 신화창조’ 새 역사 쓴다

해병대는 15일 창설 67주년을 맞아 창설 의의를 되새기고 국가와 국민의 요구에 부응하는 해병대상 정립을 결의하는 기념행사를 가졌다.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는 경기 화성·김포·강화와 서북도서, 경북 포항, 제주도 등지에서는 오전 10시를 기해 각급 부대원들이 정렬한 가운데 엄숙한 창설기념식이 열렸다.

해병대 모든 장병은 최근 북한이 핵 실험 미사일 발사 등 도발을 이어가고 있는 것과 관련, 지난 67년간 조국을 지켜낸 자부심과 사명감을 갖고 앞으로의 60년도 반드시 대한민국을 사수하겠다고 결의했다.

해병대사령부는 창설 기념행사에 이어 본청 대회의실에서 사령부 근무 장병들과 계층별 대표, 주한 미 해병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병대 헌장을 낭독하고 케이크 커팅식을 가졌다.

이상훈 사령관은 “최강의 군대라는 명성과 전통 뒤에는 국가를 향한 애국심과 끝없는 전우애를 위해 자기 목숨을 새의 깃털처럼 가볍게 여기셨던 3062위(位)의 호국영웅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헌신해 온 선배 해병들의 희생이 있었다”며 “해병대 신화창조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는 데 매진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해병대사령부 대회의실에서 열린 해병대 창설 67주년 기념식에서 의장대장이 해병대의 정신이 담긴 ‘해병대 헌장’을 낭독하고 있다.  해병대사령부 제공

 

충성·명예·도전 ‘해병대 DNA’ 실천

해병대사령부는 이날 새로 제정한 ‘해병대 핵심가치상’ 유공자도 포상했다. 해병대 핵심가치상은 ‘해병대 DNA’를 대표하는 충성·명예·도전 등 3가지 가치를 실천해온 모범 해병에게 수여하는 명예로운 상이다. 해병대 각 부대가 추천한 29명의 모범 해병 가운데 6여단 김경일 소령과 교육단 양재형 소령이 ‘충성상’을, 연평부대 이용곤 중사와 2사단에서 전역한 최형수(예비역 병장) 씨가 ‘명예상’, 1사단 공지훈 대위와 사령부 의무대대 권진선 중사가 ‘도전상’의 영예를 안았다.

충성상을 받은 김 소령은 지난 2014년 10월 대청도에서 발생한 폭발물 사고 당시 현장에 나서 지뢰지대 통로를 개척하고 구조활동을 벌이며 조직을 위해 헌신하는 ‘용감한 해병’의 표상이 됐다. 양 소령은 ‘해병대 DNA’ 회복을 위한 군사교육 혁신업무를 주도적으로 추진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 중사는 평소 적극적인 봉사·기부 활동을 통해 포항시로부터 자원봉사활동 은장, 대한민국 호국대상을 수상하며 해병대의 명예를 드높였다. 최근에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서북도서 지역 학생들을 위해 장학기금 100만 원을 기부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 씨는 복무 중이던 지난 1월 대구 지하철 1호선 명덕역에서 선로에 추락해 생명이 위태로운 시각장애인을 구조한 공로로 명예상을 수상했다.

도전상을 수상한 공 대위는 다목적 포 조준감사 키트를 개발해 예산절감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해 국방부 군사제안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권 중사는 서북도서 응급처치 능력 향상을 위한 진단장비 도입과 전군 최초의 천막형 이동전개 의무시설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해병대가 걸어온 길]


1949년 380명 소수 병력으로 출발

6·25전쟁서 ‘귀신 잡는 해병’ 유래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 해병대의 역사는 성경의 한 구절로 압축이 가능하다. 해병대는 1949년 4월 15일 초대 사령관 신현준 중령을 비롯한 380명의 소수 병력으로 경남 진해 덕산비행장에서 출발했다. 창설 후 각종 작전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운 해병대의 진가는 6·25전쟁에서 빛을 발했다. 해병대는 장항·군산·이리지구 전투를 시작으로 인천상륙작전 및 수도 서울탈환작전 등 수많은 전투에서 용전분투하며 ‘귀신 잡는 해병’ ‘무적 해병’이란 명성을 얻었다.

베트남전쟁이 한창이던 1965년 9월 20일 1사단 2연대를 중심으로 창설된 청룡부대는 전투부대 최초로 해외원정군으로 파병되며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청룡부대는 ‘짜빈동 전투’ 등 수많은 전투에서 용맹함을 과시하며 세계에 ‘신화를 남긴 해병’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1973년 10월 10일 해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지만 14년 만인 1987년 11월 11일 현역·예비역 해병들의 노력 끝에 해병대사령부를 재창설하면서 새로운 도약을 시작했다. 2011년 10월 15일 해병대 지휘관리 개선 법률이 통과돼 지휘권한을 되찾음으로써 독자적인 역할과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해병대는 현재 2개의 사단과 서북도서 방어부대인 6여단·연평부대, 전략도서인 제주도를 지키는 9여단, 교육단 등을 갖추고 고유의 작전수행능력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2010년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국민의 요구와 시대적 소명에 따라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해 전·평시 서북도서 방어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올해는 전시, 재해·재난 시에 신속히 대처할 수 있는 3000명 규모의 연대급 병력을 신속기동부대로 편성해 국가전략기동부대로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또 해병대 항공단 창설을 추진하면서 공지기동 해병대 건설에도 박차를 기하고 있다. 국외로는 아프가니스탄·아이티 등지에서 세계평화 유지활동을 위한 파병을 나서고 코브라골드·림팩훈련 등 연합훈련 참가범위를 확대하면서 국격 향상에도 앞장서고 있다.

해병대 관계자는 “해병대는 앞으로도 ‘강하고 정직한 호국충성 해병대’의 모습을 통해 국민의 군대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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