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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차려 종료 시간 알리지 않으면 처벌받을 수도

기사 게시 일시 : 2018-10-29 17:33

●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로 알아보는 장병 인권 이야기 ③ 규정을 벗어난 얼차려

목적이 정당한 얼차려라도 신체·정신적으로 과도한 피해 있으면 안 돼

종료 시간·주의사항 언급해 징벌에 대한 명확성·예측 가능성 담보해야

 

 

 


얼차려의 사전적 의미는 ‘군의 기율을 바로잡기 위하여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비폭력적 방법으로 육체적인 고통을 주는 일’입니다. 군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얼차려는 분명히 유용하고 필요한 수단입니다. 이런 얼차려는 하급자의 어떤 잘못에 대해 내려지는 신상필벌의 의미도 있습니다. 일종의 징계 기능을 하기도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잘못에 대한 제재라 하더라도 무조건적인 얼차려가 허용될까요? 사례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전역을 앞둔 김 병장은 전역 전날 생활관에서 하면 안 되는 이른바 ‘전역빵’을 했습니다. 비록 전역을 앞두고 있지만 엄연히 현역 신분에서 지시를 불이행한 것이니 얼차려를 받을 수 있습니다. 김 병장을 포함한 전역병 3명은 전역 당일 완전군장으로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무려 6시간 30분 동안 연병장을 보행하는 얼차려를 받았습니다. 김 병장 일행은 연병장 총 90여 바퀴를 돌았는데 이는 무려 22.5㎞에 달하는 거리입니다. 육군의 1일 얼차려 기준이 4㎞이니 5배가 넘는 거리입니다. 게다가 이 ‘뺑뺑이’가 도대체 언제 끝날 것인지 명확한 지시는 물론 현장 감독자도 없었습니다. 과연 이런 얼차려는 정당한 것일까요?

당시 얼차려를 지시한 대대장은 ‘전역빵’이라는 병영 부조리에 대한 신상필벌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기 때문에 인권침해가 아니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렇다면 병영 부조리 행위가 발생한 경우 무조건 얼차려가 가능할까요?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사건의 얼차려가 병영 부조리에 대한 신상필벌, 부대 내 구타 및 가혹 행위 등을 엄단하기 위한 목적에서 시행된 것으로 정당성은 인정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대대장은 얼차려 종료 시간의 명확한 언급을 하지 않았고 주의사항 등을 교육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는 육군의 얼차려 규정을 위반해 과도하게 얼차려를 시행하여 병사들에게 신체적·정신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피해를 준 것입니다.

2016년 4월 6일 인권위는 비록 목적이 정당하더라도 기준을 위반한 과도한 얼차려는 인권침해이기 때문에 해당 부대 사단장에게 대대장을 경고 조치할 것과 이 사례를 전파하고 관련한 지휘관 교육을 실시할 것, 유사 행위의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 시행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처럼 목적이 정당한 얼차려라도 규정을 위반해 과도하게 할 경우 가혹 행위로 처벌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공군에서 기본군사훈련을 받던 중 한 병사가 생활관에 두었던 총기를 다른 병사가 가져갔다는 이유로 교관의 지시를 받은 조교로부터 얼차려를 받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병사가 받은 얼차려는 ‘엎드려 뻗친 상태에서 한 손에 총을 들고 한 다리 들고 자세 유지하기’ 등 무려 일곱 가지 이상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과도한 얼차려는 기준 시간 30분을 초과해 이루어졌고 결국 병사는 신경계 손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이에 대해 인권위는 전체 훈련의 운영과 관리 책임이 있는 교관이 병사인 조교에게 얼차려 실시를 지시하고도 현장 감독을 하지 않았으며 규정에 없는 얼차려를 실시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교관에게 기준을 위반한 얼차려 시행에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인권위는 각 군에서 기준을 위반한 얼차려 관련 진정이 지속적으로 접수되고 있는 점을 고려해 얼차려 규정과 기준을 전 군에 전파하고 위반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교육을 실시할 것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다른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부대 부대장은 병사들의 제식이 불량하다는 이유로 보행 금지구역을 설정하고 제식 대열을 갖춰 주보행로로만 다니도록 지시했습니다. 부대장이 병사들에게 영내에서 제식을 하도록 지시하는 것은 지휘권의 영역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지시를 위반하여 보행 금지구역으로 통행한 병사들에 대한 제재에서 발생했습니다. 부대는 토요일 오전 규율을 위반한 병사들을 모아서 ‘○○봉사대’를 운영해 봉사 활동 명목으로 3시간가량 배수로 정비, 잡초 제거, 취사장 청소 등을 시켰습니다. 이런 얼차려에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인권위 조사에 따르면 피해 병사들은 ①어떤 행위를 위반해 봉사대 입소 대상이 됐는지 잘 모르겠다 ②입소 기간이 1~3주로 각기 달라 명확한 기준이 없다 ③주말에 집단으로 입소해 봉사가 아닌 군기 교육대로 인식된다 ④휴일에 휴식 시간 및 계획된 외출·면회 등을 통제당해 부당하다고 했습니다.

우선 규율 위반 행위 적발 시 바로 얼차려를 부여하지 않고 주말에 한꺼번에 시행하는 것은 ‘피교육자들이 고통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는 얼차려 규정의 취지에 맞지 않습니다. 또 주말에 휴식·외출·외박·휴가 등을 통제해 휴식권을 침해했습니다. 나아가 명칭과 달리 입소 병사들은 봉사대를 군기 교육대로 인식하고 있고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인지에 대한 명확한 규정·안내 등이 부족해 자의적으로 해석·운영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이는 징벌에 대한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지 않아 지휘권 남용 우려가 있고, 입소자가 월요일에 적발될 경우 토요일 입소 시까지 1주일 내내 부담을 가지고 생활하게 합니다.

이에 따라 인권위는 2016년 9월 28일 비록 목적이 정당하다 하더라도 병사들의 휴식권을 침해하는 주말 얼차려 개선을 국방부 장관에게 권고했습니다. 국방부는 해당 간부에 대한 경고 조치를 비롯해 주말 봉사대 운영을 금지했고, 얼차려 규정을 준수하도록 현장점검을 강화하고 관련 법규 정비를 추진하겠다고 알려왔습니다.

아직도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감정에 치우친 과도한 얼차려, 규정에 어긋난 얼차려가 심심치 않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평소 장병들은 얼차려 규정과 기준을 숙지하고 자신의 인권이 침해당한 경우 인권위 등을 통한 권리 구제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나아가 외부전문가들과 함께 인권교육을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이 병행된다면 규정과 방침에 맞는 얼차려 부여를 통한 군기 확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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