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국방일보

HOME

국방

오피니언

기획/연재

사회/경제

스포츠/문화

병영생활

포토

국방 > 기타

대한민국 지켜낸 영웅들의 공로 기억합니다

기사 게시 일시 : 2014-07-27 17:07

제61주년 정전협정·유엔군 참전의 날 훈장 서훈자 스토리

 

 

유엔군 5·국군 4명 등 참전용사 9명 무공훈장 수여

정부 “6·25전쟁 당시 국가 영웅 발굴해 서훈할 계획

 

 

정부는 국내외 6·25전쟁 참전용사 가운데 공이 있는 분들을 적극 발굴해 훈장을 수여함으로써, 대한민국을 위한 그분들의 헌신에 걸맞은 예우가 이뤄지도록 하고 있다. 27일 개최된 제61주년 정전협정 및 유엔군 참전의 날 정부중앙행사에서는 유엔군 5명과 국군 4명 등 국내외 참전용사 9명이 무공훈장을 받았다. 행사에 참석하지 못한 분들까지 포함하면 서훈자는 총 11명이다. 새롭게 찾아낸 영웅들의 면면을 살펴본다.

한국의 자유를 수호한 벽안의 영웅들

 유엔군 무공훈장 서훈자는 에드워드 로우니 예비역 중장과 로널드 유진 로서 예비역 중사, 히로시 미야무라 예비역 하사, 아이너 잉만 예비역 병장, 고(故) 메흐멧 고넨츠 대위(추서계급) 등 5명으로 이들에게는 태극무공훈장이 주어졌다.

 참전 당시 중령이었던 에드워드 로우니 장군은 인천상륙작전 입안자 중 한 사람으로 서울 수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으며, 1950년 12월 장진호전투 당시 포위된 미 해병대1사단과 미 육군7사단을 공중보급과 교량 건설 작전으로 구출한 바 있다. 또 흥남철수 작전에서도 10만여 명의 북한 피란민을 후송하는 데 공헌했다.

 로널드 유진 로서는 1952년 1월 철의 삼각지대 평기리전투에 참전해 3번이나 최전방에서 홀로 적진을 공격했으며, 13명의 적을 사살하고 탄약을 노획하는 등 강인한 모습을 보였으며 미국에서 명예훈장을 받았다.

 일본계 미국인 2세인 히로시 미야무라는 1951년 4월 24일 연천 대전리전투에서 용전분투해 50명 이상의 적군을 사살하고 심각한 부상을 입었음에도 맡은 위치를 끝까지 사수하다 중공군에게 포로로 붙잡혔다. 그는 28개월간의 포로 생활을 견뎌낸 뒤 석방돼 명예훈장을 받았다.

 아이너 잉만은 1951년 2월 26일 당시 상병으로 평창과 제천 사이에 위치한 말타리 인근에 구축된 적 진지 공격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홀로 소총과 수류탄으로 적 기관총 진지 하나를 격파한 다음 기관총에 접근하는 과정에서 수류탄 폭발과 적의 사격으로 안면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분전을 거듭해 100여 명의 적을 퇴각하게 만들었다. 병장으로 진급한 그는 1951년 명예훈장을 수상했다.

   터키군 참전용사인 메흐멧 고넨츠 대위는 38선에 인접한 425고지에서 포병전방관측장교로 복무했다. 그는 1951년 4월 23일 진행된 중공군의 대공세 때 성공적인 포격을 유도해 많은 적군 사상자를 냈으나, 적의 포위 공격으로 중대원과 함께 전멸 위기에 놓이게 됐다. 이에 그는 자신이 있는 좌표로 포격을 요청했으며 적과 함께 산화했다. 그의 희생은 중공군의 대규모 남하를 저지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피와 땀으로 조국을 사수한 영웅들

 한국군 무공훈장 서훈자는 고(故) 최병창 중위와 고(故) 김일록 대위, 고(故) 감봉용 경감, 고(故) 노종해 지서장(이상 추서계급), 손해원 이등중사, 방조운 하사 등 6명이다. 이들 중 전사한 4명에게는 충무무공훈장이, 생존한 2명에게는 화랑무공훈장이 서훈됐다.

 육군6사단 제2연대 제12중대 기관총소대장으로 근무하던 최병창 소위는 중공군의 5차 공세에 맞서는 용문산전투에 투입됐다. 1951년 5월 19일 그가 배치된 353고지에 중공군이 물밀듯이 밀어닥치자, 최 소위는 적탄에 쓰러진 기관총 사수 대신 사격을 가하다 적의 수류탄에 전사했다. 최 소위가 이끈 초전 승리는 용문산을 지켜내고 우리 군이 화천저수지까지 중공군을 추격해 중공군 3개 사단을 궤멸시키는 초석이 됐다.

 김일록 중위는 전쟁이 발발한 1950년 6월 25일 당시 김포비행장 탈환작전에 참가했다. 이 작전에서 그는 적탄에 다리 관통상을 입었음에도 선임중대장으로서 부대의 선두에서 과감한 돌격과 백병전을 지휘하고, 많은 적을 사살했으나 집중사격을 받고 장렬히 전사했다.

 개전 당시 개성철도 경찰대장이었던 감봉용 경감은 50여 명의 경찰대 본부요원들과 함께 개전 첫날 본부건물 사수를 결의하고 압도적인 전력의 북한군에 맞서 싸우다 많은 동료들과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노종해 경위는 현재 춘천시인 강원도 춘성군 북산면 내평지서장으로 근무하다 6·25전쟁을 맞이했다. 개전 첫날 그는 12명의 경찰관, 북산면 청년단장과 함께 북한군에 맞서 20여 명을 사살하고 적의 진격을 1시간 이상 지연시켜 춘천 방어에 크게 기여했으나, 그 과정에서 목숨을 조국에 바쳤다.

 손해원 이등중사는 다부동전투에 참전해 1950년 8월 15일 진행된 674고지 탈환전에서 진지로 접근하는 적을 사살하고 1명을 포로로 잡음으로써 소속 부대의 위기를 극복하는 데 일조했다.

 방조운 하사는 백석산전투에 참전해 1951년 9월 30일 소속 부대와 함께 중공군이 점령하고 있는 1065고지를 공격했다. 방 하사는 4시간에 걸친 치열한 근접전투 후 단신 포복으로 적 기관총 진지에 접근해 수류탄으로 이를 파괴하는 공로를 세웠다.

   정부는 앞으로도 6·25전쟁 당시 국가에 공헌했던 영웅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해 서훈한다는 계획이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