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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군사 국군 건설의 아버지 이범석

국군 건설의 아버지 이범석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것을 기념해 시가행진하는 국군.
국군의 수준 높여라…정병 양성 위한 첫걸음 - 2018. 10. 30.
공산군대 사상전·심리전 직접 체험반공정신 강화에 주안점 두고 추진사병 구타 등 잘못된 병영문화 척결군기·사기 높이려 사병복지 우선시국방기조를 연합국방으로 내세운 철기가 역점으로 추진했던 2대 정책은 정병 양성과 국군의 사상 통일이었다. 당시는 광복 직후로 다양한 출신들이 국군에 들어와 있었다. 일본군 출신, 만주군 출신, 중국군 출신, 또 민족주의자, 공산주의자 등 다양한 출신과 사상들이 국군에 유입되었다....
국방부 훈령 제1호 발령… 경비대 국군으로 편입 - 2018. 10. 16.
국군, 국민 지키는 국민의 군대 천명진충보국·군기 엄수 등 군의 사명 제시광복군의 독립투쟁정신 계승 분명히철기는 대통령으로부터 군정과 군령에 관한 권한을 부여받고, 국방부 장관으로서 각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이를 토대로 지난 30여 년간의 경험과 식견을 더해 신생 대한민국의 국방체계를 설계하고 추진했다. 철기는 국군을 창설하고, 국군의 성격을 현대 국가에 맞게 ‘국방군’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여기에 부합하는...
초대 국방장관… 국군 정통성 잇고 국방 초석 마련 - 2018. 10. 09.
과거 연결하며 미래 준비에 최적임자군정사령관 美 하지 장군도 강력 추천8개월간 방위체계 수립 등 혼신의 노력독립군-광복군-국군 정통성 연결 상징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한민국 초대 내각의 수장인 국무총리에 철기를 지명하여 제헌국회의 동의를 얻는다. 이어서 철기를 초대 국방부 장관으로 겸직시킨다. 군의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을 대신해 군정과 군령권을 행사하는 자리였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와 상해임시정부의 법통...
광복 직후 열린 임시정부 환국 환영대회. 국민들의 열렬한 환영에도 불구하고 임시정부 요인들은 개인 자격으로 환국했다.  필자 제공
새 나라에 새 인물을…신생 대한민국 지도자 양성 - 2018. 09. 18.
청년일꾼 양성위해 민족청년단 창설초대단장으로 단원 백만여 명 이끌어애국심과 민족관 주입하기위해 노력해단 이후에도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철기가 아직 중국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한반도에 진주한 미군사령관 하지 중장은 철기에게 미 군정 통위부장(국방장관)직을 제의했다. 하지만 철기는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귀국 후 철기는 일체의 정치단체에 가담하지 않았다. 오직 새 국가의 미래를 위한 청년일꾼을 양성하는 데 전...
“철기는 광복군 이끌고 국내로 가 日 항복 받아내라” - 2018. 09. 11.
김구, 철기 국내 정진군 총사령관에 임명美 OSS의 연합군 포로 후송작전에 동행김준엽·장준하·노능서 등과 여의도 착륙일본군에 무장해제 요구했으나 거절당해저녁 日 수비대장 무릎 꿇고 항복주 따라일본의 갑작스러운 조기 항복으로 한미 군사작전인 독수리계획은 무산됐다. 그러자 철기는 미군과 함께 조국 땅에 주둔한 일본군 지휘부로부터 직접 항복을 받고 임시정부 명의로 조국 땅을 접수하기 위해 과감하게 여의도로 날...
미국 OSS 간부들의 방문을 앞두고 사열 중인 광복군 2지대. 철기가 지휘하는 2지대는 한미 연합작전의 광복군 주력부대였다.
한미 연합작전 첫 단추…새로운 역사를 채우다 - 2018. 09. 04.
당시 미국은 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미 트루먼 대통령은 김구가 도너번 미 전략정보국(OSS) 국장을 통해 보낸 임정주석 명의의 ‘한미 공동협력에 대한 서신’을 받고는 “미국 정부가 승인하지 않은 자칭 정부대표의 메시지를 본인에게 전달했다”고 격노할 정도였다. 철기는 어떻게 한미 합작을 성사시킬 수 있었을까? 역사는 사소한 일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철기가 최초 실마리를 쉽게 풀어낼 수 있었...
광복군.美 OSS 연합, 한반도 침투 ‘독수리작전’ 추진 - 2018. 08. 28.
한반도 전략적 가치 부각시켜임정·OSS·주중 미군 합동회의1945년 서울 등 5개 지역 투입각종 첩보 수집·봉기 지원 계획철기가 추진했던 임시정부 최초의 한미 연합작전이 독수리작전이다. 이 작전은 연합작전 그 자체를 떠나서 그동안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던 태평양전쟁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부각시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일제의 조기 항복으로 비록 미완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그때까지 중국 국민당 하...
광복군 제2지대 영문 약자(KIA Ⅱ)로 정렬해 포즈를 취한 2지대 대원들. 사진=필자 제공
중국이 채운 족쇄 벗고…독자적 군사활동 날개 달다 - 2018. 08. 21.
박찬익·철기, 준승 취소 적극 나서중국과 협의 통해 새로운 군사협정1945년 원조한국광복군판법 발표기타 군사활동 상호 협조하에 가능‘한국광복군 9개 행동준승’은 이후 3년여 동안 한국광복군을 사실상 중국군의 보조부대로 만들었다. 대부분 재정을 중국 측에서 지원받는 입장이었지만, 일국의 군대를 표방하고 있던 광복군이 작전 외에도 정책·행정 등 모든 분야를 중국에 구속받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처사였다. 결국 3년...
참모장서 2지대장으로 조국 광복 선봉에 서다 - 2018. 08. 07.
조선의용대 광복군 합류 조직 개편2지대는 5지대 주축 1·2지대 통합치밀한 계획성·과감한 추진력 탁월사사로움 배제하고 솔선수범 지휘1941년 10월 30일, 중국 국민당은 광복군을 승인하고 이어서 한국광복군 9개 준승(準繩·규칙이란 뜻)과 새로운 편성표를 하달했다. 이로 인해 광복군의 독자 작전활동은 통제됐고, 참모장을 비롯한 주요 참모직위에 중국군이 보직됐다. 철기는 사령부 참모장에서 2지대장으로 내려와 2지대를 ...
광복군 창설 초대 참모장 맡아 군사외교 ‘동분서주’ - 2018. 07. 31.
1940년 초 김구 등 임정요인과 재회광복군 창설 7인 준비위원으로 뽑혀9월 17일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거행동포 대상 적극적인 광복군 모집 활동1941년 中 군사위, 광복군 성립 인준오는 8월 4일은 78년 전 중국 충칭에서 임시정부의 ‘광복군 총사령부’가 창설된 날이다.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정식 창설식을 열지만, 총사령부는 앞서 8월 4일에 창설됐다. 광복군 총사령부 사령관에는 지청천, 참모장에는 철기가 임명돼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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