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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잊혀진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불꽃같은 조국 사랑, 우리 가슴에 영원히 타오르리 - 2017. 12. 26.
기업·교육·독립운동가 등으로 자신의 모든 것 조국·민족 위해 헌신선생의 위대한 삶, 지금 우리에게 무한 자긍심 갖게 하는 계기 되길최재형 선생이 순국한 지 올해 2017년이 97주기가 되는 해다. 2020년이 되면 최재형 선생 순국 100주기를 맞는다. 그동안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알아본 것처럼 연해주 초기 독립운동사에서 최재형 선생만큼 많은 일을 한 사람도 없고, 최재형 선생처럼 한인들의 존경을 받은 인물도 없다. 최...
재판도 없이 총살 억울한데 묘비도 묘도 없어… - 2017. 12. 19.
11명 자녀 석달 동안 검은 옷 입어넷째 딸 소피아 아버지께 쓴 편지조국 잃은 국민의 원한으로 절절…일본은 4월 7일 투옥된 최재형을 이송하던 중 감옥에서 가까운 왕바실재 언덕에서 재판도 없이 총살했다. 박환 교수의 『시베리아 한인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에 나오는 최재형의 사망에 대한 일본의 기록을 보면 다음과 같다.‘니코리스크 파견 족립포병대위의 보고에 의하면 같은 지역에서 우리 헌병은 수비보병대와 협력해 ...
日, 반볼셰비키 지원 ‘극동지역 지배’ 야욕 드러내 - 2017. 12. 12.
니항전투 참패 日 ‘생명 등 위협’ 구실 시베리아 장악 나서혁명군 무장 해제 명령·우수리스크 철도 중심으로 총공세한인 마을 습격한 후 도망가지 못하게 가두고 불 지르기도여러 곳에서 임시정부가 구성되자 이를 통합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대한국민의회는 통합된 임시정부를 한인이 많이 살고 독립전쟁에 유리한 간도나 연해주에 두자고 주장했다. 그러나 상하이의 임시정부는 일본군이 시베리아로 진격 중이라는 이유로...
불붙은 독립 열정, 최초의 임정 ‘대한국민의회’ 뜨다 - 2017. 12. 05.
3·1운동 직후 연해주 한인들 대대적 만세 시위운동상하이·한성에서도 독립 향한 임시정부 속속 수립러시아의 10월혁명 과정에서 한인들은 일본군이 지원하는 10월혁명 반대세력인 백위파를 적대시했다. 이 과정에서 상당한 규모의 한인 의용병 부대가 구성돼 일제와 싸웠다. 연해주에서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한촌에서 결성됐던 전로한족회중앙총회가 대한국민의회로 개편돼 3·1운동 직후에 임시정부 성격으로 수립을 선포했다....
노령 한인들 군자금 모금·총기 모집 ‘너도 나도’ - 2017. 11. 28.
군 자치기관 의원·감사위 의장에 선출아내와 아이들 이사 잠시 행복한 생활김하석의 무력시위운동 계획에 동참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외교부장 맡아슬라비얀카에 살던 최재형은 일본 침략군이 상륙하자 1918년 자신의 행방을 알리지 않고 가족의 품을 떠나 니콜스크-우수리스크로 갔다. 최재형은 우수리스크에서 군 자치기관의 의원과 자치기관 감사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최재형은 그 이전에도 의병부대와 함께 작전...
태극기 행진·연극 공연… 항일 독립 열기 ‘활활’ - 2017. 11. 21.
국치일 맞아 신한촌 민회 이름 인쇄물 배포한민학교 학생들은 애국가 부르며 시가행진민회 주최 기념행사에 1000여 명이나 참석이토 저격 을사오적 풍자극 민족의식 고취재러 한인들은 대대적으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중앙기관을 설치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앞장서서 블라디보스토크 일대에서 만세 시위운동을 전개하기로 계획했다. 보이스카우트들을 동원해서 독립기를 앞세우고 도시를 돌아다니며 연합국 인사들 앞에서 ...
거물급 대신 얼굴 안 알려진 인물로 日 감시 따돌려 - 2017. 11. 14.
“두 대표 고베서 배로 출발” 발표실제론 시베리아 철로 통해 이동문창범, 전로한족회중앙총회 기반임시정부 ‘대한국민의회’ 구성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할 인물로 윤해와 고창일을 선정한 이유를 살펴보기로 한다. 두 사람을 회의 참석자로 선정한 것은 당시 러시아에서 간행되는 각종 신문과 미주 동포들과의 교신에서 얻은 정보에 바탕을 둔 결정이었다. 당시 파리에는 세계 각 지역에서 조선인 대표를 파견하고 있는 상황이라,...
파리강화회의서 독립 확신… 윤해·고창일 파견 - 2017. 11. 07.
윌슨 대통령 ‘민족자결주의’ 주창에러시아 한인독립세력 다시 힘 얻어미국의 동포들과도 빈번하게 연락니코리스크 한족회 대규모 한인회의노령지역 대표로 최재형·이동휘 선임니코리스크에 모인 사람들은 한족대운동회라는 명의하에 태극기를 앞세우고 니코리스크 전역을 돌아다니며 조선의 독립을 외쳤다. 이에 놀란 일본 군대는 전원을 해산시키고 태극기를 압수했다. 그러나 한인들은 미군과 교섭해 태극기를 돌려받았다. 재...
귀국하는 체코군 소총 값싸게 사들여 의병 무장 - 2017. 11. 01.
독립자금의 대부분 총기 확보에 써시베리아 독립 지지 고려족중앙총회중앙정부 지지 한족중앙총회 대립미주 한인사회, 자주 독립 주장 위해뉴욕 세계약소민족동맹회의에 참석항일의병들이 주로 사용했던 모신 소총이 바로 체코군단으로부터 사들인 총이었다. 체코군단은 시베리아 횡단철도의 동쪽 시발역인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후 배를 이용해 본국으로 돌아갔는데 배를 타기 전에 휴대하고 있던 총을 처분한다. 무기 중개업...
“백위파든 적위파든 의병에 도움되면 다하겠다” - 2017. 10. 24.
시베리아에 갇힌 체코군단 구출 목표日·연합군 연해주 일대 대대적 상륙시베리아 내전 간섭 일본군이 대다수러일전쟁 후 일본은 적대국 러시아와 다시 손을 잡게 되는데 그 계기가 체코 군단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었다. 그 직전인 1918년 4월 5일, 일본 해군 육전대 100여 명이 블라디보스토크에 상륙했다. 러시아 혁명의 혼란 속에서 일본인 상점의 점원 1명이 살해됐는데 일본군의 상륙은 자국민 보호 명목이었다.1918년 6월 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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