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바로가기 본문바로가기
  • 국방홍보원
  • 국방tv바로가기
  • 국방fm바로가기
  • 국방포토바로가기
  • 국방일보바로가기
  • 국방저널바로가기
  • e-book
  • PDF
  • PDF
  • 로그인
  • 구독신청
  • 광고안내

홈 > 기획/연재 > 완결 박희의 한국사 명장열전

박희의 한국사 명장열전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목숨 걸고 절개와 정도를 지키니 모든 이가 감복 - 2016. 12. 28.
국가 안위와 백성을 먼저 살펴박동선(朴東善·1562∼1640)의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자수(子粹), 호는 서포(西浦)다. 조년(兆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소(紹)이고, 아버지는 사재감정(司宰監正) 응천(應川)이며 어머니는 사옹원 참봉 김희려(金希呂)의 딸이다. 1590년 급제해 승문원에 들어갔다. 임진왜란 중인 1593년에 검열(檢閱)에 제수되고 광해군이 세자로서 분조(分朝·전란 때 임시로 세운 조정)를 이끌 때 수...
안향의 후손…22세 때 임진왜란 나자 왜군 토벌 앞장 - 2016. 12. 21.
안몽윤(安夢尹·1571~1650)은 본관이 순흥(順興)이고 자는 상경(商卿)이다. 음보(蔭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조상의 공훈이나 음덕에 의해 특별한 대우를 받아 관직을 얻거나 벼슬에 보임되는 것)로 무관이 됐고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웠다. 적 돕던 부적자 포박 공로 선조가 포상가문이 안향(安珦)의 후손으로 대대로 국가에 이바지한 공이 지대했다. 아버지는 직장(直長)을 지낸 세복(世復)이고 어머니는 광주김씨로 이조참판 김...
이괄의 방자함에 격분…군사 해산시키고 분연히 자결 - 2016. 12. 14.
이윤서(李胤緖·1574~1624)의 자는 선승(善承)이고 시호는 장의(壯毅)다. 본관은 합천(陜川)이며, 증조는 홍문관수찬 희증(希曾)이며, 아버지는 천수(天受)다.어렸을 때 높고 큰 뜻을 품었고 재주와 용맹이 출중했으며, 자라서는 글을 배우고 과거 공부에 힘써 학문이 날로 향상됐다. 임란 후 무관 중 청백리로 이름 높아1594년 국가에서 무사를 많이 뽑자 그는 학문을 그만두고 무과(武科)에 응시해 급제했다. 임진왜란으로 나라...
“여기서 한 치도 떠나지 않을 것” 우국충절의 용장…장렬히 항전 - 2016. 12. 07.
25세 임진왜란 크게 전공 세워서생포에 침입한 왜군 무찔러병자호란 때 전사…병조판서 추증최진립(崔震立·1568~1636)의 자는 사건(士建), 호는 잠와(潛窩), 시호는 정무(貞武)다. 군기시첨정(軍器寺僉正) 최득정(崔得汀)의 증손으로, 조부는 순릉참봉 최삼빙(崔三聘)이고, 아버지는 최신보(崔臣輔)이며 어머니는 평해황씨(平海黃氏)로 참봉 황사종(黃士鐘)의 딸이다. 겨우 3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10세에는 아버지를 여의었다...
국가 위난 앞장서서 막아낸 ‘군인정신의 표상’ - 2016. 11. 30.
송여종(宋汝悰·1553~1609)의 자는 언온(彦蘊)이고 본관은 여산(礪山)이다. 체구가 9척 장신이었는데, 향시(鄕試)에는 여러 번 합격했으나 대과(大科)에는 합격하지 못했다.낙안군수 신호의 휘하에서 종군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이 남해에서 승세를 타고 진격해오자 온 나라가 살아날 계책만 도모했다. 이에 송여종이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낙안군수(樂安郡守) 신호(申浩)의 휘하에 들어갔다. 신호는 평소 송여종을 큰 그릇으로 여...
北 여진족서 南 삼포 왜인까지 토벌 ‘전공 혁혁’ - 2016. 11. 16.
황형(黃衡·1459~1520)은 조선 중종 때 무신으로 자는 언평(彦平), 시호는 장무(莊武),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황형의 아버지가 늙도록 자식이 없었는데 후부인(後夫人)인 사헌부감찰 남인보(南仁甫)의 딸이 해주의 수양산(首陽山)에서 기도해 그를 낳았다.“성현 사업 알려라” 임금이 책 하사황형은 어려서부터 글을 읽어 큰 뜻을 통했고 관례(성년식)를 치른 뒤에 원주의 원보곤(元甫崑)의 딸에게 장가들었다. 원보곤은 당시에...
이순신 장군이 후임자로 점찍은 ‘해전의 신’ - 2016. 11. 09.
원균 패한 뒤 이순신에 원군 요청옥포·영등포·사천·진해서 큰 승리이운룡(李雲龍·1562~1610)의 본관은 재령(載寧)이고 자는 경현(景見)이며 호는 동계(東溪)로 청도 출신이다. 1585년 무과에 올라 1587년 선전관에 임명되고 1589년 옥포만호(玉浦萬戶)로 임명됐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자. 영남 일대가 허무하게 무너졌다. 역사기록에 나타난 원균은 비겁한 인물이다. 경상 우수사 원균이 배를 버리...
“오직 죽음만 있을 뿐” 결연한 의지로 순국충렬 - 2016. 11. 02.
권종, 권율 장군과는 4촌 형제간권종(權悰·?~1592)의 자는 희안(希顔)이고 시호는 충민(忠愍)이며 본관은 안동이다. 조선 개국의 공신인 권근(權近)이 그의 6대조이며 고조는 학문과 덕행으로 유명했던 권제다. 조부는 강화부사를 지내고 영의정을 증직(贈職·나라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 죽은 뒤에 그에게 품계·관직을 추증해 영예를 누리게 한 일)받은 권적(權勣)이고, 중림찰방(重林察訪)으로 좌찬성(左贊成)을 증직(贈職)받은...
나라 구하고 세속에 초연했던 우국충절의 맹장 - 2016. 10. 26.
박진영(朴震英·1569~1641)의 자는 실재(實哉)이고 호는 광서(匡西),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그의 선조(先祖)의 본관은 본래 밀양(密陽)인데, 후손들이 함안(咸安)으로 옮겨가면서 함안을 관향으로 삼았다. 임진왜란 때 의병 모집 왜적 토벌그는 일찍이 재주와 식견이 보통 사람보다 뛰어나고 호방한 기개가 있었으나 명예는 탐탁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임진왜란 때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같이 의병을 모집해 왜적을 토벌했다. ...
백성에게는 너그럽게 나라 근본은 공고하게 - 2016. 10. 19.
효종의 북벌계획에 조언과 보필임금의 권고·조정의 인망쏠려강화유수로 임명되기도재상으로 있을 때는 큰 것을 견지자잘한 일 파헤치지 않는 큰 그릇홍중보(洪重普·1612~1671)의 자는 원백(遠伯), 호는 이천(梨川)이며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숙성(夙成·나이는 어리지만 정신적·육체적 발육이 빨라 어른스러움)해 기예에 통달하지 못한 바가 없었다. 병조참판 조부 홍서익(洪瑞翼)의 병이 위독해지자 손자인 중보에게 가야금...
처음 이전 1 2 3 4 5  끝 

HOT PHO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