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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알려지지않은 6·25 전쟁영웅

알려지지않은 6·25 전쟁영웅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박격포 되찾아라” 3문 회수·30여정 소총 노획 - 2015. 05. 10.
6배 넘는 병력에 포위돼 용전분투 … 차량·박격포 등 철수 못해야간공격으로 작전 성공했으나 北 반격에 이태식 중위 전사 北 진격 저지해 국군이 낙동강방어선까지 철수하는 시간 확보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한강방어선에서 철수한 국군은 7월 5일 평택에서 부대개편을 단행했다. 건군 이래 최초로 제1군단사령부가 시흥지구전투사령부를 모체로 창설됐다. 예하 부대로 수도사단, 제1·2사단이 편입됐다. 그때 제1사단 제13...
박격포의 귀재, 적 진지를 초토화시키다 - 2015. 04. 26.
19세 김재옥 교사의 제보로 동락초 점령한 적 연대 격멸 박격포소대 활약으로 승리화기류 2000여점 등 노획도북한군에 대한 자신감 찾아 ●대한민국 사관후보생의 자긍심으로 열악한 여건 극복 신용관 중위는 1926년 12월 5일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에서 출생했으며, 1948년 12월 육사 제8기로 사관학교에 입교했다. 당시 사관학교의 급식 여건은 보리밥과 콩나물국이 전부일 정도로 열악했다. 그뿐만 아니라 복장도 미군이 물려...
계속된 후퇴 울분 씻듯육탄으로 적 남진 저지 - 2015. 04. 19.
● 이범석 국방부 장관, 간부 확충으로 전쟁을 대비하다.  경윤호 대위는 전북 부안군 벽산면에서 1930년 6월 4일 출생했다. 그는 1948년 12월 7일 육사 제8기로 사관학교에 입교해 1949년 5월 23일 소위로 임관했다. 당시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이었던 이범석은 북한군의 남침 위협에 대비, 적극적으로 군 간부 확충에 주력했다. 특히 육사 8기생은 최초로 군 경력자가 아닌 순수 민간자원에서 선발해 1345명이 장교로 ...
“대대장의 원수를 갚자” 피끓는 격전 일진일퇴 - 2015. 04. 12.
북한군 진격 저지했으나 중과부적 … 흩어진 대대 수습해 단양으로 철수죽령 936고지 점령했으나 적 급습에 최취성 대위는 호국의 별로 산화 국군의 한강방어선은 6·25 전쟁이 일어난 지 9일째인 7월 3일 아침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북한군의 전차가 복구된 경부복선철교를 이용해 노량진에 도달하면서부터다. 북한군은 국군의 거점이었던 영등포-시흥을 짓밟고 안양과 수원을 거쳐 오산-평택 방향으로 파죽지세의 진격을 계속...
대한민국 운명 가른 5일, 김포지구서 악전고투 (1950년 6월 29일~7월 3일) - 2015. 04. 05.
北 영등포 진출 막기 위해 오쇠천 일대서 북한군 공격 저지15연대와 합류 138고지 탈환…기세 몰아 126고지까지 진격50년 7월 3일 138고지서 전사…한강방어선 유지 시간 벌어 서울 구로구 오류동 지역은 서남부의 요충지 영등포에 이르는 관문이다. 1950년 6월 28일 김포공항을 점령한 북한군 제6사단은 곧바로 오류동·부천 방향으로 진출해 영등포를 공격하려 했다. 북한군이 오류동 일대를 점령한다면 국군의 한강방어선은 측...
소총만으로 ‘6일 전투’ 지휘北 도하 끈질기게 막았다 - 2015. 03. 29.
1950년 6월 28일 北 미아리고개 통과국군, 서울 포기하고 한강교 폭파北 공격 거세던 대방역 일대서한강방어선 수호 北과 치열한 공방7월 3일 새벽 적 포화에 전사6일간의 한강방어전투 성공 한몫 서울 여의도와 그 일대의 한강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968년 한강종합개발계획이 시행되면서였다. 1950년대 한강의 모습은 현재와 많이 달랐다. 특히 오늘의 주인공 고(故) 유상재(兪象在) 소령이 방어전투를 수행...
장검 뽑아 들고 선두에 서서 “돌격 앞으로” - 2015. 03. 22.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총탄에 산화김포공항탈환 실패로 끝났지만적군 발 묶어 한강방어선 구축 기여 1950년 6·25 전쟁 당시 서울과 그 근교에 2개의 공항이 있었다. 여의도공항과 김포공항이다. 기습남침을 감행한 북한군은 두 곳의 공항을 핵심 표적으로 삼아 공격을 감행했다. 6월 25일 오전 10시쯤 북한의 전투기가 서울 상공에 나타나 여의도와 김포공항을 정찰했다. 12시쯤에는 YAK기 4대가 용산 상공을 선회하며 공격을 감행...
작전명 ‘김포공항 탈환’ - 2015. 03. 16.
육군본부 김포반도 경계 취약성 간파, 김포사 급편북한군 6사단 상대로 6월 28일까지 지연전 벌여제1사단 12연대 2대대 등 가용부대 총동원… 작전 실패탈환전투 주도한 강문헌 대위 희생 기려 소령 계급 추서6·25 전쟁 초기, 위기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도 발생했다. 그중 김포반도가 가장 시급했다. 당시 국군 수뇌부는 김포반도의 위협을 사전에 예상하지 못했다. 김포반도 북단에는 6·25 전쟁 이전까지 단 한 명의 경...
생명도 구하고 전투력 살렸다 - 2015. 03. 03.
북한의 옹진반도 공격으로 사면초가 상황민간선박으로 국군·피란민 1300여명 수송송호림 소령·민간인 등 합심해 임무수행 성과17연대 무사히 철수 … 후방지역 안정화 기여1945년 광복과 함께 38도선으로 분단된 황해도 남쪽 옹진반도 일대는 경기만(京畿灣)에 의해 고립된 조그만 섬과 같았다. 38도선은 지형보다는 정치적 고려에 의해 지도상에서 설정된 경계선이었다. 북한은 1949년 초부터 은파산을 비롯한 옹진반도 일대에...
전차에 수류탄 투척 … 방심하던 북한군 ‘아비규환’ - 2015. 02. 22.
축석령전투서 분산된 병력 일부 서울 시가지에서 게릴라전 백복성 상사와 9명 부사관도 특공대 결성해 청량리서 활약 北 전차 12대 중 7대 파괴 … 우리도 끝내 4명 전사 3명 실종 예나 지금이나 서울의 청량리는 기억이 새삼스러운 지명이다. 특히 군 생활을 경험한 예비역 장병들에게 청량리라는 이름은 추억을 안겨준다. 서울의 동측에서 도심으로 들어가는 길목이며 한반도의 남·동·북쪽을 연결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기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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