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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진정한한국의벗 밴플리트장군

진정한한국의벗 밴플리트장군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이젠 우리 모두가 그를 마음속에 담아 영원히 기려야 - 2013. 11. 17.
동족상잔 전쟁 치러 흑인에게 자유 준 링컨과 닮아전쟁영웅으로 100세까지 장수 ‘영원한 군인’ 명성  ※아내 헬렌과 사별 1983년 12월 말, 밴 플리트는 68년간 결혼생활을 함께한 아내 헬렌, 그리고 딸들 가족과 함께 2주일간 카리브 해로 크리스마스 크루즈 여행을 떠났다. 이듬해 1월 5일 헬렌은 여행 중에 영원히 밴 플리트의 곁을 떠났다. 사인(死因)은 심장마비였다. 10개월 후, 92세의 밴 플리트는 65세의 버지니아 웰스...
아들 실종 직후인 1952년 4월 14일 한국 부임 1주년을 맞아 태극기를 흔들며 서울 시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밴 플리트 장군.
美측6·25전쟁 더 이상 개입 않으려 하자 크게 실망 - 2013. 11. 13.
“목숨 바쳐 지키고자 했던 자유와 정의에 어긋나” 전역 결심 환송행사땐 서울시민 3분의 1 운집…아들 혼 남긴채 본국으로●부임 1주년 기념 퍼레이드  1952년 3월 19일, 밴 플리트는 평생 기억에 남을 만한 회갑연을 치렀다. 그것은 천수를 누린 노인에게 푸짐한 잔치를 해주는 풍습을 가진 한국에서 성대한 회갑연을 맞았고, 특히 의미 있었던 것은 갓 한국 전선에 부임한 외아들 지미가 잔치에 참석해 함께 축하 케이크를 ...
이승만 대통령과 육사 창설 1주년 기념식 참석을 위해 1953년 1월 김포공항에 도착한 밴 플리트 장군.
병력증강·교육 등 한국군 정예화 온 힘 다해 - 2013. 11. 12.
22개월 간 8군사령관 근무시 한국군 장병과 생사고락 한국군 10개→20개 사단으로 증강 결정적 후원자 역할●이승만 대통령의 미 의회연설 1954년 미국을 국빈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은 7월 28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미 의회에서 연설했다. 연설의 서두에서 그는 6·25전쟁 당시 우리를 도운 미군 지휘관과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한 다음 맥아더, 워커, 리지웨이, 클라크, 테일러 등 유엔사령관과 제8군사령관은 이름만 ...
한국군 훈련소를 찾은 이승만 대통령과 밴 플리트.
“자유를 위한 한국인의 투쟁의지에 감동” - 2013. 11. 11.
美 뉴스위크 표지인물 소개·라이프 誌에 휴전 관련 기고 부임 8일째 중공군의 춘계공세…국군6사단 전폭 지원 ● 뉴스위크 표지인물 공산주의자들은 1951년 춘계 대공세의 패배로 전력(戰力)에 심각한 타격을 입자, 휴전을 제안했다. 제안자는 중공이나 북한이 아닌 공산주의 종주국이자 6·25전쟁을 조종한 소련이었다. 1951년 6월 23일, 말리크 주유엔 소련대사는 휴전을 제안했고 1951년 7월 10일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시작...
중공군 제2차 대공세 저지…전승에 고무되다 - 2013. 11. 10.
전쟁터 잿더미 속에도 “언젠가 손님들이 돌아올 거요” 외딴 골목 노점상 노파와의 대화에서 서울 사수 결심●밴 플리트 추모엽서 밴 플리트가 타계한 다음 해인 1993년 3월 19일, 미국에서 그를 추모하는 엽서가 발행됐다. 이날은 그의 101세 생일이었다. 엽서는 저명한 역사인물 화가(畵家) 하워드 코슬로우가 그린 밴 플리트 장군 초상화와 이력사항이 담겨 있다. 이 엽서에 소개된 밴 플리트의 이력에는 다음과 같이 흥미로...
워싱턴 공항에서 부인과 작별의 키스 (1951년 4월)
리지웨이<제8군사령관> 후임으로 한국행 비행기에 몸싣다 - 2013. 11. 07.
부임 일주일 만에 공산군의 서울 탈환 대공세 막아 1949년에 이어 두번째로 TIME 표지 인물로 소개 ●한국전쟁 지휘봉을 잡다 1950년 7월 15일, 그리스에서 귀임한 밴 플리트는 한 달 후에 모병, 교육훈련, 예비군과 학군단 운용 등이 주업무인 미 제2군사령관에 취임했다. 당시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선에 많은 병력지원을 요구하고 있었는데, 유럽과 나토를 선호하는 클라크 장군(6·25휴전협정에 서명한 인물) 등 다수의 군부 ...
사관생도 시절의 밴 플리트.(1914년)
밴 플리트-안중근 자기절제·희생정신 ‘닮아도 너무 닮아’ - 2013. 11. 06.
밴 플리트, 아이젠하워와 동기로 그리스 내전 종식 시켜 6·25전쟁 발발하자 유엔지상군사령관으로 지휘봉 잡아●안중근과 밴 플리트 ‘안응칠 역사’(안중근 장군 자서전)에는 1892년, 14세의 청년 안중근의 모습이 묘사돼 있다. 그해에 할아버지가 타계했으며, 어려서부터 사냥꾼들을 따라 산과 들로 다녔던 장군은 그때부터 총을 메고 본격적으로 사냥을 즐겼다. 학문에 등한해서 부모님과 선생님들의 꾸지람을 받고 친구들의 ...
1952년 4월 13일(부활절)에 아들의 실종을   위로하는 편지를 읽는 밴 플리트.
아들 비보 접하고 실낱같은 생존을 기대했지만… - 2013. 11. 05.
아내와 가족을 안심시키는 편지 속엔 이미 죽음 예감 실종 다음날 지휘관의 의연한 태도 속 한국군 부대 시찰●아들을 잃은 충무공의 일기 세계 전쟁문학사를 통틀어 전장에서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비통함이 가장 감동적으로 묘사된 것은 ‘난중일기’가 아닐까 한다. 1597년 10월 14일(양력 : 11월 22일) 자 이순신 장군의 애절한 일기를 보기로 하자.  “맑음. 새벽 2시께에 꿈을 꾸었는데, 말 타고 언덕 위를 지나다가 말이 ...
밴 플리트 장군 부자의 마지막 사진.(1952년 3월   19일 밴 플리트 회갑잔치에서)
밴 플리트, 외아들 지미 6·25전쟁 중 잃다 - 2013. 11. 04.
B-26 폭격기 4번째 출격 중 평북 선천지역에서 실종 “아버지 돕기 위해” 자원…훈남으로 사냥에 천부적 재능 ●‘내 몫까지 살아 주’ 북한 공산집단이 한반도 적화를 위해서 동족의 가슴에 총을 겨눴던 6·25전쟁은 자유를 사랑하는 한민족과 세계인에게 커다란 상처를 남겼다. 그 상처는 많은 영화로 제작됐으며, 그 중 하나가 ‘내 몫까지 살아 주’(1967년)다. 전쟁 중에 사랑하는 아내와 생이별한 사내가 재혼해서 단란...
한국의 자유·행복위해 싸운 장군에게 감사와 경애의 마음을 담다 - 2013. 11. 04.
연재를 시작하며! 초등학교 시절, 필자는 도덕 교과서에서 밴 플리트 장군과 그의 아들이 6·25전쟁 중에 대한민국의 자유 수호를 위해서 기여했다는 사실을 배웠다. 하지만, 박인환 시인이 헌시를 써서 증정할 정도의 인물인 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들에 관해 자세히 알기 위해서 자료를 모으고 싶었으나, 국내에서는 자료를 찾기 어려웠다. 다행히도 미국과 독일에서 근무하는 기회에 밴 플리트 장군과 그의 아들에 관한 많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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