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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휴전 징비록(懲毖錄)

휴전 징비록(懲毖錄)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휴전 1년 후인 1954년 8월 1일 미국 워싱턴의 파운드리 감리교회에서 다시 만난 이승만 대통령과 밴 플리트 장군.(맨 왼쪽은 프레더릭 해리스 목사)
南, 자유의 물결 넘실… 휴전 60년 北, 공산 독재가 넘실… - 2013. 07. 25.
자유 대한민국은 최빈국에서 세계 경제대국 우뚝 북한은 여전히 특권계급이 득실 주민의 자유 박탈이땅의 자유와 평화 지켜준 장병과 유엔군에 경의를…▶잘못된 전쟁? 1950년 11월 중공군이 6·25전쟁에 개입하자, 맥아더 장군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워싱턴에서 6ㆍ25전쟁을 지휘했던 브래들리(Omar Bradleyㆍ1893~1981) 합참의장은 의회증언을 통해 맥아더를 강하게 질책했다. “...
클라크 장군의 저서 ‘다뉴브강에서 압록강까지’(1954) 표지. 필자제공
“휴전, 마음이 무거웠다. 훗날 더 큰 피의 희생이…” - 2013. 07. 24.
클라크 장군, 1953년 7월 27일 오후 1시 휴전협정 서명휴전회담 보이코트하던 최덕신 소장 참석에 기뻐 평화는 우리가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 줄 때 보장▶휴전 협정의 조인 1952년 5월 22일, 마크 클라크(Mark W. Clark, 1896~1984) 장군이 리지웨이의 후임으로 유엔군사령관에 임명됐으며, 윌리엄 해리슨(William K. Harrison, 1895~1987: 클라크의 미 육사 동창) 중장이 같은 날 조이 제독 후임으로 휴전회담 유엔 측 수석대표...
조이 제독의 일기를 책자로 펴낸 ‘싸우며 협상하기’ 표지. 필자제공
“자유를 원한다면 ‘힘’을 가져라, 그리고 협상하라” - 2013. 07. 23.
조이 제독, 일기를 책으로 펴낸 ‘공산주의자들의 협상전술’서 조언회담 기간은 짧게 하고 대가없이 양보하면 안돼 군사적 위협 병행해 회담 이끌면 상대 꺾을 수 있어 이순신 장군이 전란 중에 ‘난중일기’를 남겼듯이 조이 제독도 휴전 협상 중에 일기를 썼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공산주의자들의 협상전술’을 집필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일기는 그가 사망한 지 22년 만인 1978년 ‘싸우며 협상하기(Negotiating While Figh...
1952년 광복절 기념식장에 나란히 선 이승만 대통령과 클라크 장군.  필자제공
˝당당한 대한민국 대통령<이승만> VS 소련과 중공의 꼭두각시<김... - 2013. 07. 23.
李 대통령, 앉으나 서나 민주국가 건설·평화통일 염원죽음을 각오 반공포로 석방 ‘휴전 반대’…세계가 놀라김일성, 北대사로 부임한 스티코프와 한반도 적화 공모▶소련과 중공의 꼭두각시 김일성 ‘공산주의자들의 협상전술’에서 조이 제독은 휴전회담의 공산 측 실질적 대표가 남일이 아니라 중공군 지휘관 세팡이라고 단정했다. 이는 광복 이후 6·25전쟁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실권자가 김일성이 아니라 테렌티 스티코프(1...
“연락장교 이수영 중령은 자랑스러운 군인이었다” - 2013. 07. 21.
한국어·영어·일어·중국어에 능숙하고 독일어도 구사 우리측 대표 백선엽 장군 보좌…佛 대사 재직중 타계 공산측 실질적 수석대표는 남일이 아닌 중공의 세팡▶휴전회담 연락장교 이수영 중령 1972년 4월 21일 새벽(현지 시간) 파리에서 이수영(李壽榮 : 1921~1972) 주프랑스 한국대사가 타계했다. 자살로 발표된 그의 죽음은 우리 정부에서는 물론 프랑스 외교가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무려 7년간 프랑스 대사로 파견국...
환담하는 트루먼(앞쪽 왼쪽)과 애틀리(앞쪽 오른쪽). 필자제공
‘실리주의’ 애틀리<영국 총리> 워싱턴으로 가 트루먼<미국 대통... - 2013. 07. 23.
양국 정상회담 직후 유엔총회서 ‘휴전’ 추진 결의우리나라 반대에도 1951년 7월 10일 개성서 첫 회담유엔군 대표 조이 제독 “이 협상 결코 시작 말았어야…” ▶휴전의 서막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맥아더 장군은 유엔 결의에 따라 10월 11일 북진 명령을 하달했다. 영국은 중공의 개입을 우려해 북진에 반대했으나, 한국군과 유엔군은 38선을 넘어 압록강까지 진격했다. 11월 25일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
6·25전쟁 중 전황 브리핑에 참석한 종군기자들.  필자제공
‘사실’을 전달하는 기자 VS ‘허위’를 전달하는 기자 - 2013. 07. 23.
“한국군 막강하다” “6·25전쟁 인기없다” 엇갈린 보도 짐 루카스, 26개월 간 발로 뛰며 전쟁참상 진실 알려 일부 기자들 사려 깊지 못한 주장으로 악영향 끼쳐 ▶무분별한 일부 종군기자들 AP통신 종군기자 오에치피 킹은 미국 정부의 고위관리와 정치인들이 6·25전쟁에서 승리해야겠다는 의지가 시들해지는 것 이외에, 그들의 이런 행태를 부추기는 일부 종군기자들의 비열한 행태를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공산주의자...
6·25전쟁 중 미국 정부의 무기력을 신랄하게 비난했던 종군기자 오에이치피 킹.필자제공
“미 정책 당국 1951년 4월 맥아더 장군 소환하다” - 2013. 07. 23.
AP통신 종군기자 킹, 美 나약한 태도 강력 비난 밴 플리트, 어려움 속 6·25전쟁 승리 의지 불태워▶종군기자 오에이치피 킹 6·25전쟁 발발 후 초기의 몇 개월간은 많은 고통이 따랐지만, 침략의 희생자인 우리는 참을 만했다. 미국과 그 밖의 자유세계가 우리와 힘을 합쳐 침략자들을 궤멸시키고 응징할 때가 오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대는 3개월 후에 인천상륙작전으로 실현 가능하게 돼 희망이 고조됐다.  ...
6·25전쟁 발발 3일 후인 1950년 6월 28일 미국 Interbational News Photo지가 배포한 1948년 10월 이승만 대통령의 일본 방문시 촬영된 사진. 사진에서 맥아더 장군의 결연한 표정과 이승만 대통령의 수심에 가득 찬 표정이 대조적이다. Interbational News Photo지는 이 사진을 6·25전쟁 직후에 배포함으로써 6·25전쟁의 침략자가 누구이며 피해자가 누군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필자제공
“북한군이 38선 넘어 한국을 침공했다!” - 2013. 07. 17.
북한 공산집단의 6·25전쟁 도발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 이외에 가장 경악했던 국민은 서독인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우리처럼 국토가 분단됐던 독일의 유력지들이 6·25 발발 직후 보도한 사설은 전쟁의 발발 원인과 침략자에 관한 유익한 정보를 제공한다.北 치밀한 계획하에 사전 예고 없이 기습공격 英, 유엔안보리 결정따라 군대 파병 의사 선언˝▶ “아시아에서의 전쟁” - 디 벨트 : 독일의 대표적 보수 성향 일간지, ...
‘휴전 60년’ 화려한 불빛의 南, 암흑천지의 北…왜? - 2013. 07. 15.
유성룡 불후의 명저 ‘징비록’ 통해 교훈 제시 北 반인륜적 만행 책임 전가 의도 심히 우려 ▶오늘의 남북한 비교 인공위성이 지난해 촬영한 한반도 사진을 살펴보기로 하자. 휴전선을 경계로 남쪽은 마치 불난 것처럼 전 지역이 밝고 화려한 빛을 발하는 반면, 북쪽은 평양에만 희미한 불빛이 보일 뿐 나머지 지역은 암흑천지다.  극명하게 대조되는 남북한의 실상을 담은 이 사진을 글로 풀어 설명해주는 기사가 있다.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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