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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6·25 지원국열전

6·25 지원국열전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전 세계 국가 63%가 한국과 함께했다” - 2013. 07. 25.
 6·25전쟁이 발발하자 63개 국가가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나섰다. 이는 당시 전 세계 국가가 93개였음을 감안하면 3분의 2에 가까운 63%의 나라가 대한민국 편에 선 것이다. 이 중 16개 국가는 병력을 보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적과 맞서 싸웠으며, 5개 국가는 의료지원을 펼쳤다. 39개 국가는 물자를 보내 전쟁기간과 전후 대한민국의 복구에 도움을 줬으며, 3개 국가가 물자지원 의사를 표명했다. 유엔군 참전·정전 60주년을 ...
1일 최대 64회 수술… 수많은 생명 구한 이동외과병원 - 2013. 07. 24.
6·25전쟁 당시 노르웨이의 헌신적인 의료지원에 대해 감사의 뜻을 전하는 ‘노르웨이 참전 기념비’가 오늘 의정부에 세워진다. 국내 노르웨이 참전기념비는 동두천에도 또 하나가 있다. 이들 지역은 노르웨이가 전쟁 중 이동외과병원(NORMASH)을 운영하면서 주둔했던 곳이다. 이들 기념비에는 전상자뿐만 아니라 전쟁고아 등 민간인에게도 큰 도움을 줬던 노르웨이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담겨 있다.노르웨이는 6·25전쟁으로 고...
참전국 중 유일한 UN비회원국… 민간인 질병 퇴치에 공헌 - 2013. 07. 23.
 이탈리아는 6·25전쟁 당시 유엔회원국이 아니었음에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대한민국을 지원하기 위해 의료지원부대를 파견했다. 1951년 11월 이탈리아의 제68적십자병원 요원들이 부산항에 도착하면서, 이탈리아는 21개 6·25전쟁 참전·의료지원국 가운데 유일한 유엔 비회원국이며 가장 마지막 파견국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대한민국을 찾았던 이탈리아 제68적십자병원 연인원은 128명에 이른다. 유엔회원국이 아니었던 이탈리아는 유엔의 결정...
최첨단 병원선 파견…치료 환자 생존율 99.6% 경이적 기록 - 2013. 07. 22.
 덴마크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유엔회원국 가운데 가장 먼저 지원의사를 통보한 국가다. 의료지원을 결정한 덴마크가 파견한 것은 당시로써 최첨단 설비를 갖춘 병원선 유틀란디아(Jutlandia) 호였다. 유틀란디아 호를 타고 한국을 찾은 덴마크 의료진은 연인원 630명에 달했으며, 탁월한 의술로 전쟁 기간에 진료 환자 생존율 99.6%라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웠다.  덴마크의 8500톤급 병원선 유틀란디아 호는 6·25전쟁을 겪고...
최전선서 위험 무릅쓰고 야전병원 활동 - 2013. 07. 21.
 인도는 6·25전쟁 의료지원국 가운데 가장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가 발생한 국가다. 이는 인도가 파견한 제60야전병원이 전쟁기간 내내 포탄이 빗발치는 최전선 인근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60야전병원의 위험을 무릅쓴 신속한 응급조치는 많은 부상병의 목숨을 구했으며, 언제 부상을 입을지 모르는 병사들에게 이들의 존재가 큰 위안이 됐다.  인도가 북한에 침략당한 대한민국에 대한 의료지원을 결정한 것은 1950년 11월 ...
휴전 이후에도 남아 대한민국 의료발전 기여 - 2013. 07. 18.
 스웨덴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으로부터 침략당한 대한민국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의료지원을 선택했다. 전쟁 기간에 스웨덴 의료제대는 주요 후방병원의 역할을 수행했고, 휴전이 이뤄진 후에도 대한민국에 남아 질병 퇴치와 의료기술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6·25전쟁 16개 참전지원국에 이어 스웨덴부터 5개 의료지원국의 활동을 소개한다.  스웨덴은 6·25전쟁 기간 연인원 162명의 의료진과 지원세력을 대한민국에 보냈다.  대한민국 지원을 ...
제공권·제해권 장악 전쟁양상 유리하게 이끌어 - 2013. 07. 17.
 한반도 지상에서 공산세력과 자유진영이 일진일퇴의 치열한 혈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미 해군과 공군은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전쟁기간 내내 제해권과 제공권을 장악하고, 지상군의 승리를 위한 전폭적인 지원 작전을 펼쳤다. 미 해·공군은 적의 치열한 저항으로 2400여 대의 항공기와 5척의 함정이 피해를 입는 가운데에도 적 전투부대뿐만 아니라 전쟁수행을 위한 보급·수송·기반시설에 심후한 타격을 줘 아군에 유리한 전쟁...
최초·최대 참전국…공산세력과 최전선서 싸우다 - 2013. 07. 16.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면서도 고향을 뒤로하고 피비린내나는 머나먼 전쟁터로 떠났던 미국 참전용사들에 대해 특별한 자부심을 느낀다.” 미국 척 헤이글 국방장관은 지난 6월 미 국방성 내에 문을 연 6·25전쟁 전시관 개관식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 6·25전쟁 당시 미국은 육·해·공군을 통틀어 연인원 178만9000명의 병력을 대한민국에 보내 자유와 평화를 파괴하는 적들에 맞섰다. 6·25전쟁 최대 참...
5100명 넘는 육ㆍ해군 자유 수호 기여 - 2013. 07. 15.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 자리 잡고 있는 국방대학교에는 한국 양식의 6층 석탑이 있다. 석가탑과 정림사지 석탑을 섞어놓은 듯한 높이 12m의 한국풍 석탑이 콜롬비아 수도에 설치된 이유는 다름 아닌 6·25전쟁 때문이다. 콜롬비아는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군대를 보낸 나라다. 그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대한민국 정부는 1973년 콜롬비아에 이 석탑을 설치한 것이다.  콜롬...
253번의 전투 ‘강뉴 대대’ 불패 신화 쓰다 - 2013. 07. 14.
 1951년 4월 에티오피아의 하일레 셀라시에(Haile Selassie) 황제는 머나먼 나라 대한민국을 돕기 위해 출정하는 부대에 ‘강뉴(Kagnew)’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6·25전쟁 기간 중 강뉴 대대에는 두 가지가 없었는데, 한 가지는 ‘패배’였고 다른 한 가지는 ‘포로가 된 자’였다. 이들은 253번의 크고 작은 전투에서 모두 승리했으며, 싸우다 죽을지언정 항복해 포로로 잡히는 걸 수치스럽게 생각한 전사 중의 전사였다.  1935년 10월 에티오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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