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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패전속승리학

패전속승리학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69>대서양 전 - 2006. 12. 26.
끝없는 의사결정이 내려지는 전쟁에서 정보는 너무나도 중요하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적의 정보를 파악하고 아군의 보안을 유지하려는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어느 참전국보다 비화통신수단에 노력을 기울였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이미 암호집이 영국군에 넘어가 작전계획이 완전 노출됐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독일 해군은 1926년 ‘에니그마’(Enigma)라는 비화기를 도입했다. 이어 28...
<67>둠루프나르 전투 - 2006. 12. 12.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일원으로 참전한 터키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우리와 나란히 3·4위를 한 기억으로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나라다. 이러한 터키를 더욱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터키의 성립 과정과 이웃 그리스와의 오랜 앙숙관계를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터키의 뿌리인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20세기 초 발칸전쟁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이어 패전하면서 형편없이 해체되는 위기를 맞았다.1920년 맺어진 세브르 조약...
<66>이오지마 전투 - 2006. 12. 05.
이제는 감독으로 성가를 드높이는 왕년의 명배우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올해 미일 양국의 주목을 동시에 끌고 있다. 이오지마 전투를 미국의 시각으로 조망한 ‘우리 아버지들의 깃발’과 일본의 시각으로 조망한 ‘이오지마에서 보낸 편지’를 연이어 발표한 것. 전후 60년이 지난 진부해 보이는 소재임에도, 스리바치산 정상의 성조기 게양 순간(사진)은 여전히 미 해병대 역사의 상징으로 기억되고 있다.태평양전쟁 말기 이오지...
<65>미드웨이 해전 - 2006. 11. 28.
태평양전쟁 초기 일본 해군은 미국·호주 사이의 연락선 차단을 목표로 남태평양 작전에 주력할 태세였다. 반면 연합함대 사령관 야마모토 이소로쿠 제독은 시간을 끌수록 미국이 우세해지므로 곧바로 미드웨이 섬을 거쳐 하와이를 공략해 강화를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작전 승인을 거부하던 일본 해군은 1942년 4월 둘리틀 폭격대의 기습 본토 공격을 받고서야 미드웨이 공격작전을 승인했다. 5월 27일, 4척의 항공모함을 주...
<64>피그만 침공 - 2006. 11. 21.
미·소 양국을 전쟁 일보 직전으로 몰아넣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단호함을 과시해 지도자로서 강렬한 이미지를 남겼다. 하지만 사실 미국의 연이은 대쿠바 정책의 실패가 빚어낸 아찔한 종착점이 쿠바 미사일 위기였다. 그 배경에는 바로 1년 전의 피그만(灣) 침공이라는 악수가 있었다. 59년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이끄는 게릴라들은 3년여의 투쟁 끝에 친미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시키고 이른바...
<63>소련의 아프칸 침공 - 2006. 11. 14.
1970년대 동서 간 데탕트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소련군 재래식 전력은 서방에 심각한 위협이자 수수께끼였다. 방대한 유럽 전장을 상정해 대규모 종심작전과 제파식 전술을 추구한 소련군은 매우 강력한 전력을 구축한 것으로 보였지만 위력을 검증할 실전 사례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소련군의 능력에 대해서는 양 극단의 억측이 난무했다.이런 소련군에 79년 새로운 실전기회가 찾아왔다. 78년 쿠데타 이후 친소 사회...
<62>바르바로사 작전과 선제타격 - 2006. 10. 31.
적대국의 대치 상황에서 어느 쪽이 먼저 행동에 나서 주도권을 잡느냐의 선택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북한의 핵실험 여파로 한미 연합 위기 대응체제 점검이 강조되고 있는 현재 선제 타격(preemptive strike) 가능성에 대해 세인들의 지적이 이어지는 것도 당연한 추세다. 군사사(軍事史)에서 가장 대규모 선제 타격이 논의된 사례로는 단연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계획인 바르바로사 작전 이전의 대치상황이 꼽히고 있다. 독일...
<61>구정공세 - 2006. 10. 24.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 18일, ABC 방송과의 인터뷰 중 현 이라크 상황이 베트남전쟁 당시의 ‘구정공세’와 비슷하다고 인정해 파문을 일으켰다. 백악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는 많은 미국인들에게 베트남전쟁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데 충분했다.구정공세는 1968년 전면적인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남베트남을 붕괴시키고자 기획된 대대적인 무장봉기였다. 당시 북베트남군 총사령관 보 응웬 지압은 섣부른 봉기를 반...
<60>부코바르 전투 - 2006. 10. 17.
1980년 티토 사망 이후 정세 불안이 가중되던 유고슬라비아는 80년대 후반부터 불어닥친 공산권의 연쇄 붕괴로 일대 혼란에 빠져들었다. 특히 남부의 세르비아가 밀로셰비치 대통령 주도로 배타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강한 팽창 욕구를 내보이자, 북부의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는 연방 탈퇴를 통해 독자노선을 걷고자 했다.크로아티아·세르비아는 이질성이 강한 데다 민족 감정이 번지면서 각기 자국 내 상대 국민에 대한 차별이 ...
<59>크레타 섬 강습전 - 2006. 09. 26.
‘항공기를 이용해 적 후방에 병력을 투입하자’.제1차 세계대전으로 항공기가 전쟁에서 갖는 가치가 증명되자 1920~30년대에는 항공기를 이용, 공수부대를 운용하자는 아이디어로까지 발전됐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탈리아·소련·독일 등이 발전시켜 온 공수부대의 실전 능력에 대한 폭넓은 시험 무대가 됐다. 독일은 전쟁 초기부터 공수부대를 이용, 주요 목표를 탈취하는 작전을 즐겨 구사했다. 작전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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