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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국군발달사

국군발달사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47·끝>선진강군으로의 지향 - 2008. 12. 31.
역사적으로 한반도는 주변의 동서남북에 4극(polarity)이 존재해 왔고, 지금도 그 같은 지정학적 구조는 변함이 없다. 대륙세력(land power)과 해양세력(sea power) 간의 공간적 접점에 위치한 한국은 시·공간적으로 주변국의 긴밀한 영향을 받았던 것이다. 19세기의 전환기에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충격하에 이를 모방한 ‘대응적 제국주의’의 제일선에 있던 일제에 의해 결국 국권을 도륙당함으로써 잦은 외침의 교훈을 잊어...
<46>부사관 제도의 발전 - 2008. 12. 24.
국군의 부사관(당시 하사관이라 칭함) 제도는 건군기 당시부터 존재해 왔다. 현역병에서 선발해 사단 하사관교육대에서 교육 후 하사로 임관했는데, 당시 병장 계급이 없었으므로 주로 일등병에서 충원했다. 그러나 인사관리 측면에서 보면 부사관은 상당 기간 사병의 인사관리와 구분돼 있지 않았다. 전쟁기의 혼란한 상황을 거쳐 비로소 1953년 경력관리를 위해 1년 전 장교에게 부여한 주특기(MOS) 제도를 사병에게 적용했다. ...
<45> 한미 연합방위체제 형성·발전 - 2008. 12. 17.
한국은 6·25전쟁을 겪은 후 휴전협정을 통해 이른바 정전체제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북한의 재침을 방지하고자 미국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했다. 양국 간의 방위조약은 1953년 10월 1일 체결돼 미 상원의 비준을 거쳐 54년 11월 17일 한미합의의사록에 양국이 서명함으로써 정식 발효됐다. 이로써 한미동맹의 기본 틀이 마련됐고, 군사적으로 한반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연합방위체제가 모색됐다. 그 후 60년대 말 닉슨 ...
<44>국방목표의 제정과 개정 - 2008. 12. 10.
국방부는 1960년대 중반기부터 ‘국방부 목표’ 또는 ‘국방목적’이라는 용어를 국방정책 업무의 공식어로 사용했다. 현재 확인되는 최초의 국방정책 1차 문건인 ‘66년도 국방기본시책’이라는 문건에서는 1966년의 국가 목표와 국방정책의 기본방향 그리고 국방부의 목표와 방침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후 68년 6월 발간한 ‘국방백서 1968’에서는 7가지의 국방목표를 제시했는데 이는 임전태세, 장병의 정신무장 및 교육훈...
<43>정전체제의 형성과 전개 - 2008. 12. 03.
건군기에 힘겨운 동족상잔의 비극을 치러야 했던 국군은 육탄으로 적을 저지하면서 유엔의 지원으로 가까스로 정전을 맞이하게 됐다. 1953년 7월 27일 체결된 정전협정은 한반도에서 무력충돌 방지와 위기관리를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기능해 왔다. 엄격하게는 유엔의 중재에 의한 교전 당사국의 적대행위의 중지이기 때문에 정전(Truce)에 해당되지만 협정문의 영어본에 휴전(Armistice)이라 쓰여 있어 구분없이 혼용되고 있다. ...
<42>국방정책의 전개 - 2008. 11. 26.
건국 초기인 제1공화국의 국방정책은 ‘연합국방’이 기조였다. 국제적으로 공산주의 세력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을 위시한 민주 진영의 군사 역량을 결집시켜 연합전력을 이룬다는 것이었다. 국군조직법·국방부직제와 같은 제 법령을 제정하고, 미국을 비롯한 자유 진영의 군사력을 규합하기 위한 군사외교 역량을 강화하며, ‘사병제일주의’를 기치로 교육훈련에 진력했지만 끝내 전쟁을 예방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1953년 10월...
<41>각군 조직의 발전 - 2008. 11. 19.
1948년 11월 30일, 국군조직법 제정으로 대한민국 육·해·공군의 편성에 관한 법적 토대가 마련됐다. 처음에는 육·해군만 조직됐고 본부의 직제는 국방부 직제에 따랐다. 그리고 12월 7일 공포된 국방부 직제에 근거, 국방부에 국방부본부·육군본부·해군본부를 나란히 편성했다. 육군본부에는 총참모장과 참모부장, 5개국(인사·정보·작전교육·군수·호군)과 11개 감실(감찰·고급부관·법무·헌병·재무·포병·공병·통신...
<40>국방부 조직의 변천 - 2008. 11. 12.
1948년 정부 수립과 동시에 정부조직법(법률제1호)에 의해 국방부가 설치됐다. 법제적으로는 대통령 통수권하에 최고국방위원회와 그 소속 중앙정보국, 국방자원관리위원회 및 군사참의원을 뒀으며, 국방부에는 수장인 국방장관과 장관의 군령 분야를 보좌하는 참모총장을 뒀다. 본부에는 국방부 직제에 따라 비서실, 제1국(군무국), 제2국(정훈국), 제3국(관리국), 제4국(정보국), 별도의 항공국이 편성됐다. 그러나 49년 5월 9...
<39>군사력 건설 - 2008. 11. 05.
국군의 군사력 건설은 6·25전쟁을 전후로 미군의 군사원조와 지원에 힘입어 크게 향상됐다. 8·15 정부 수립 직후 미처 전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전쟁을 치른 국군은 이른바 ‘밴 플리트계획’을 통해 20개 사단으로 확장하며 전력을 증강시켰다. 정원은 1958년도부터 60년까지 두 차례에 걸친 감군(減軍)으로 72만 명에서 60만 명 수준으로 조정했다. 그리고 감군과정에서 주한미군의 장비 현대화와 유도탄 대대의 배...
<38>국군의 해외파병-파월영웅2 - 2008. 10. 29.
1964년 국군 비전투부대가 파견된 데 이어서 추가 요청으로 65년 9월부터 전투부대인 수도사단과 제2해병여단의 베트남 파병이 이뤄졌다. 청룡부대라 불린 제2해병여단의 주둔지는 뚜이호아(Tuy Hoa)였다. 인근 깜란 항을 이용해 상륙한 부대는 그해 12월부터 파월부대로서는 최초로 여단급 규모의 작전인 청룡1호작전을 전개했으며, 이듬해 2월까지 재건1·2호 작전 등 지역평정작전과 대민지원활동으로 현지인들의 신뢰와 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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