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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맺은우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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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그때 그 이야기<513>-에필로그 - 2006. 12. 27.
파독 간호원 교육 일을 주관한 덕분에 고향 처녀들을 많이 보내 줬다. 취직이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던 시대에 자격증 따서 독일에 보내 취직까지 시켜 줬다고 좋아하는 소리를 들은 기억이 있다. 그렇게 독일에 간 아내가 다달이 부쳐오는 돈으로 자식 가르치고 집까지 사는 친척을 보고 흐뭇했던 기억도 있다. 어떤 친척은 딸이 보내 온 초청장과 비행기 표로 독일에 갔다 왔다면서 “딸을 보내 준 은혜를 평생 잊지 않겠다...
<11·끝>한반도 평화 지탱하는 초석 - 2003. 12. 18.
“한반도의 안정은 한·미 양국의 확고한 동맹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북한을 포함해 모든 아시아 국가는 미국과 한국의 동맹관계가 확고함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은 동맹의 의무를 지속적으로 수행할 것이고, 이를 영광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주한미군과 한·미동맹은 굳건할 것이며 한반도의 평화를 지탱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도라산 연설 중.(2002. 2. 20)미국의 대(對) 한반도 ...
<10> 밴플리트장군과 외아들 - 2003. 12. 04.
“저는 모든 부모님이 저와 같은 심정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아들들은 나라에 대한 의무와 봉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벗을 위해 자신의 삶을 내놓은 사람보다 더 위대한 사랑은 없습니다.”폴 F 브레임 저, ‘위대한 장군 밴플리트’중에서 1952년 4월4일 8군사령관 밴플리트(James A Van Fleet) 장군의 아들 지미 중위가 B-29 폭격기를 조종, 북쪽으로 출격했다가 실종됐다. 그해 부활...
<9>1953년 7월 27일 조인 - 2003. 11. 20.
“나의 군경력을 통해 이처럼 수치스럽고 하기 싫은 서명을 해본 적은 없었다.”클라크 장군이 유엔군 최고사령관으로 정전협정에 서명하고 나서 개탄하며 한 말이다.1953년 7월27일! 이날은 3년 여 간 끌어온 6·25전쟁을 멈추게 한 정전협정이 체결된 날이다.그러나 이 협정은 전쟁에서 벗어나 완전한 평화를 이룬 협정이 아닌 또다른 대립과 갈등, 그리고 새로운 전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불완전 협정’이었기 때문에 클...
<8>중공군 포위망 과감히 돌파 - 2003. 10. 23.
“미 제1해병사단 : 전사 718명, 후송 후 사망 98명, 실종 192명, 부상 3504명의 전투 손실과 비전투 손실 3659명(대부분 동상)”“중공군 : 전사 2500여 명, 부상 1만2500여 명.”1950년 11월27일부터 12월11일까지 장진호에 배치된 미 제1해병사단이 중공군 7개 사단의 집중적인 공격을 받게 된 극한 상황에서 ‘죽음의 계곡’으로 명명된 ‘유담리-덕동령-하갈우리-고토리’ 통로를 따라 2중, 3중으로 형성된 중공군의 포위망을...
<7>한미군 선의의 ‘입성’ 경쟁 - 2003. 10. 09.
1950년 10월19일, 백선엽 장군이 지휘하는 국군 제1사단이 유엔군 중에서 최초로 평양에 입성했다. 6·25전쟁이 발발한 이래 낙동강 전선까지 밀렸던 국군은 유엔군과의 인천상륙작전이 대성공을 거둠에 따라 전 전선에 걸쳐 반격작전을 전개했고, 10월1일 국군 제3사단이 38선을 돌파함으로써 북진의 길을 열어 놓았으며, 마침내 국군 제1사단이 평양을 수복한 것이다. 사실 국군 제1사단은 처음부터 평양 탈환의 선봉으로 지정되...
<6>인천상륙 신념의 승리 - 2003. 09. 25.
“워싱턴이 이 작전을 5000분의 1의 도박으로 간주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닙니다. 그러나 본인의 결의는 확고합니다. 기필코 결행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5000분의 불가보다 1의 가능성을 어디까지나 믿고 있습니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1950년 8월23일·도쿄)1950년 9월15일. 이날은 일명 ‘크로마이트 작전’(Operation Chromite)이라고 이름 붙여진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날이다. 낙동강 전선에서 최후의 방어전...
<5>마지막 방어선 낙동강 - 2003. 09. 04.
“나는 여기 낙동강선에 역사적인 이미지를 남기고자 합니다. 즉 공산군을 막아낸 방어전의 전선으로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결집력으로서 공산 침략군을 섬멸해 나가는 반공의 출발선으로서 역사에 장식하려는 것입니다.” -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정일권 회고록 중에서〉1950년 7월27일 맥아더 장군이 사전 예고 없이 대구로 날아와 전황(戰況) 브리핑을 받고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구상을 처음 밝히면서 내린 결론이다.당시 전...
<4>워커장군 작전명 1호“Stand or Die!” - 2003. 07. 24.
1950년 7월13일 미 제8군사령부가 일본 요코하마에서 대구로 이동 설치됐다. 또한 이날은 이승만 대통령이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에게 한국군의 작전지휘권을 유엔군사령관에게 이양한다는 서신을 보낸 날이다. 바로 그날 월턴 워커 사령관에게 작전지휘권과 유엔기가 전달됐다.7월13일 현재 증원된 병력은 미 제24·25사단 일부(선발)인 약 1만8000명이며 파병이 예정된 미 제1기병사단이 오기까지 아직도 1주일을 기다려야 했다. ...
〈3〉지연전의 실패, 大田 함락 - 2003. 07. 03.
“전차로써 철수로를 확보하라!” 사단장 딘(Dean).이것은 미 제24사단장 딘 장군이 마지막으로 타전한 명령이다.최후의 일각까지 진두지휘의 모범을 보여준 지휘관의 마지막 명령.대전의 군사적 중요성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금강·소백산맥 축선을 얼마만큼 유지할 수 있는가의 관건이 되는 요충 중의 요충이었다. 그런만큼 대전 확보의 시한을 7월20일까지로 해 이 시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지탱해야만 했다. 이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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