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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임진왜란의병영웅열전

임진왜란의병영웅열전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공주 월암리에 있는 영규 묘소.#
<10·끝>임진왜란 최초의 의승장 영규(靈圭) - 2012. 05. 01.
영규(靈圭 : ?∼1592년 8월 말)는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봉기한 의승장으로서 속성(俗姓)은 박씨이고 본관은 밀양으로 서산대사 휴정(休靜)의 제자다.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해 일찍이 계룡산에 입산해 수도했다. 그는 갑사(甲寺)를 비롯해 가산사(佳山寺)·보석사(寶石寺) 등에 머물면서 오랫동안 수행했다. 충청지역 승병 800여명 봉기 조헌과 청주성 탈환 이끌어 높은 호국정신으로 승리 주도 전국 승병활동 도화선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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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의승군 정신적 지주서산대사(西山大師) - 2012. 04. 30.
서산대사 휴정(1520∼1604)은 평안도 안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최세창(崔世昌)이며, 어머니는 김씨(金氏)다. 세 살 되던 해의 4월 초파일에 한 노인이 찾아와 “꼬마스님을 뵈러 왔다”고 하며 두 손으로 어린 아이를 번쩍 안아 들고 몇 마디 주문을 외우며 머리를 쓰다듬은 다음에 그 아이의 이름을 ‘운학’이라고 짓게 했다. 어려서 아이들과 놀 때도 남다른 바가 있어 돌을 세워 부처라 하고, 모래를 쌓아 올려놓고 탑이라 하며...
사명당 사명기(경남 밀양시 표충사 소장)#
<8>평화의 외교승 사명당(四溟堂) - 2012. 04. 25.
임진왜란때 의병과 의승군은 전란을 극복하는 데 관군 못지않게 활약한 군사집단이라 하겠다. 특히 의승군은 의병에 비해 그 수는 적지만 전국 각지에서 들고일어나 많은 전과를 올렸다. 이런 의승군의 활약 뒤에는 명망 있는 의승장이 있었다. 팔도도총섭을 제수받은 서산대사[休靜]을 비롯해 사명당[惟政], 영규(靈圭), 의엄(義嚴), 처영(處英) 등이 대표적인데, 이들 의승장은 의병 또는 관군들과 협력하며 많은 전과를 올림으...
선조 임금이 하사한 권응수 선무공신 영정.#
<7>영천성 탈환전투 수장권응수(權應銖) - 2012. 04. 24.
권응수(權應銖 : 1546~1608)는 영천에서 출생한 후 1583년 무과에 급제해 무인의 길로 들어선다. 이후 훈련원 부봉사로서 북방 변경 수호 임무를 맡은 뒤 1591년 경상좌수사 박홍의 참모로 활동했다. 1592년 4월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왜적을 섬멸하기 위해 고향인 영천으로 돌아가 의병을 모집해 궐기했으며 대동전투, 한천전투 등 크고 작은 싸움에서 승리를 끌어냈고 7월 27일에는 영천성을 탈환했다. 권응수는 경주성을 되찾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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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비운의 의병장김덕령(金德齡) - 2012. 04. 23.
김덕령(1567~1596)은 전남 광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문은 한미(寒微)했지만 어려서부터 유학을 공부해 용모가 단아했고 체구는 작았지만 용력이 뛰어난 소년으로 인근에 소문이 자자했다. ‘국조인물고’에는 그에 대해 “두어 길 되는 칼을 즐겨 써서 술 기운이 있을 때면 말에 올라 산비탈을 달려 지나가면서 칼을 좌우로 휘둘러서 자르고 달리니, 지나는 곳마다 큰 소나무가 어지럽게 쓰러져 마치 폭풍우가 지나간 듯했다. …...
김천일 유묵.#
<5>김천일 ‘호남 최초의 의병’ - 2012. 04. 20.
건재(健齋) 김천일(金千鎰·1537∼1593)은 고경명(高敬命)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호남 출신 의병장 중에서 쌍벽을 이뤘던 인물이다. 그는 1592년 5월 16일, 호남에서 가장 먼저 의병을 일으켜 그해 6월부터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경명이 금산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해 조선 선비의 기개를 떨침으로써 우리 민족의 항전 의지를 보여줬다는 측면에서 상징적 의미가 컸다면, 김천일의 의병 활동은 몇 가지 실질적 전과를 기록했...
경기 의정부시 용현동 소재 정문부 묘소.#
<4>정문부‘북관대첩의 의병장’ - 2012. 04. 19.
우리 역사에는 세종·이순신·정조 등 이름만 들어도 다 아는 위대한 영웅들 외에도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며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해낸 진정한 시대의 영웅들이 존재한다. 정문부(鄭文孚, 1565~1624)는 임진왜란 때 100여 명의 의병을 모아 유격전을 벌이기 시작해 2만 명이 넘는 정예의 일본군을 함경도에서 완전히 몰아낸 의병장이며, 오랜 전쟁으로 상처받은 백성을 보살핀 어진 목민관이라 하겠다.함경도 일대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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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헌 ‘언행일치·살신성인의 표상’ - 2012. 04. 18.
조헌의 금산전투 기록화(전쟁기념관 소장).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92)은 임진왜란 당시 조선 선비의 기개를 만천하에 보여준 상징적 인물이다. 조헌은 원칙과 명분을 중시하고, 타협과 융화에는 서툴러 관료로서는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하지만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과 옳다고 믿는 것을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는 자질을 갖춘 비범한 인물이었다.조헌 흉상(전쟁기념관 소장).금산 칠백의총 봉분.조헌의 금산전투 기록화(전...
<2>‘선비 출신 60세 의병장’ 고경명 - 2012. 04. 17.
임란 초기 의병장으로 싸우다 3부자 전사 후손도 구한말까지 외세의 침략에 대항 가문 전통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이어져고경명의 임란의병 담양출병도(전쟁기념관 소장)고경명 연보(전쟁기념관 소장) 임진왜란이라는 미증유의 국난에 즈음해 농민과 함께 한 고경명은 1533년 광주시 광산구 압보촌에서 출생해 어릴 때부터 재주가 많아 칭송을 들었다. 20세에 사마시(司馬試)에 수석을 하고 26세에는 문과에 장원 급제했다. ...
<1>‘천강홍의장군’ 곽재우 - 2012. 04. 13.
13일은 임진왜란이 발발한 지 420년이 되는 날이다. 임진왜란은 조선 역사의 분수령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커다란 영향을 남긴 대전란이었다. 7년여에 걸쳐 지속된 전란은 조선왕조의 정치체제와 사회·경제적 기반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동북아시아 삼국의 국제전으로 비화됐다. 그런 임진왜란에서 조선은 개전 20일도 채 안 돼 수도인 서울이 함락되는 등 건국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으나, 이순신 장군을 위시한 조선 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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