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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기후와역사전쟁과기상

기후와역사전쟁과기상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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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돌궐 정복과 이정 장군 - 2012. 06. 11.
중원이 혼란스러웠던 남북조 시기, 북방의 소수 유목 민족들은 제각기 세력을 떨쳤다. 그중 가장 강력한 나라가 돌궐이었다. 돌궐은 수나라를 멸망시킨 당나라와 전쟁을 벌이게 된다. 몇 차례 전투 후에 돌궐의 막강한 군사력에 눌린 당나라는 돌궐에 신하로서 복종하기로 맹세한다. 당나라로서는 치욕적인 굴욕이었다. 이런 상황을 역전시킨 것은 날씨였다. 6세기에는 자연재해가 잦았던 시기였다. 고기후학에서는 당시 화산폭발...
▲ 1889년 사모아의 미국과 독일의 분할지배 기념동전. #
<168>사모아 전쟁을 끝낸 태풍 - 2012. 06. 04.
태풍을 순수한 우리말로 ‘싹쓸바람’이라고 부른다. 땅 위의 모든 것을 싹 쓸어갈 정도로 강한 바람이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신화에 나오는 태풍신은 엄청난 힘을 가진 신으로 그려진다. 유대인들은 여호와 하나님이 태풍을 주관한다고 믿는다. 그리스의 ‘포세이돈’은 삼지창을 들고 태풍을 부른다. 중동신화의 ‘마르둑’은 괴물 등 위에서 태풍과 폭풍을 조종한다. 일본의 ‘스사노오’는 큰 바람과 너울을 가져온다. 마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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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7>사막에 철도를 놓아라 - 2012. 05. 21.
19세기의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불렸다. 전 세계에 걸쳐 수많은 식민지를 경영했기 때문이다. 19세기 말 전 세계를 휩쓴 엘니뇨로 아시아와 아프리카 국가에서 대규모 기근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갔다. 이런 와중에 1882년 이집트를 식민지로 만든 영국은 자연스럽게 이집트가 지배하던 수단까지 물려받았다. 그런데 당시 수단은 이집트에 대항해 봉기 중이었다. 이집트가 수단의 수지맞는 사업인 노예무역을 폐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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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이순신 장군의 명량해전 - 2012. 05. 14.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은 일본해군에 134척의 군함을 잃었다. 조선군을 이끌었던 원균은 육지로 도망하다 매복한 왜군에게 목숨을 잃었다. 경상좌수사 배설만이 겨우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남해 쪽으로 후퇴하는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 것이다. 패전 보고를 받은 조정은 모함으로 백의종군하고 있던 이순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해 수군을 수습하게 했다. “장부가 세상에 나와 쓰일진대 목숨을 다해 충성할 것이요, 만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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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이스라엘의 혼 마사다 요새  - 2012. 05. 07.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는 말라(Forgive but not forget) 마사다 요새의 비극을!” 이스라엘 장교들은 임관식 때 마사다 요새에 오른다. 이들은 2000년 전 로마군에 항거하다 자결로써 민족혼을 지킨 960명의 용사들을 참배한다. 그들은 히브리어로 불 화(火) 자를 써놓고 종이를 불에 태워가면서 여호와 하나님 앞에 맹세한다. “다시는 이 땅을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하겠노라”고. A.D. 70년에 유태인들이 로마에 반란을 ...
<164>몽골통일전쟁 ‘마지막 승부’ - 2012. 04. 30.
“싸움에서 명예를 찾지 않고, 이기는 것에서 명예를 찾은 사람은?” 바로 칭기즈칸이다. 서양인들은 칭기즈칸을 잔인하고 포악한 정복자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는 위대한 전략가였고 전술가였다. 미국의 인류학자 잭 웨더포드는 몽골을 직접 답사하며 칭기즈칸의 생애와 몽골이 인류 역사에 미친 영향을 연구했다. 웨더포드는 칭기즈칸의 최대 성공 비결을 ‘신속하고 실용적인 실행’으로 꼽았다. 영화 ‘칭기즈칸’의 장면.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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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왜구 토벌과 세종 - 2012. 04. 23.
“가뭄으로 인한 굶주림과 병의 만연으로 인해 잇달아 쓰러진 사람의 층이 길을 덮었다.”(고려사) 고려 말은 세계적인 소빙하기(little ice age)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공민왕 21년(서기 1372년)에는 겨울에 눈이 없어 극심한 가뭄이 들면서 산이 무너지고 우물과 샘이 모두 말랐으며 포(布) 한 필 값이 쌀 1두 5승이었다고 한다. 공양왕 시대에도 여름 서리, 냉하(夏) 등으로 기온이 낮았으며 기상재해가 빈번했다. 일본도 마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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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이스터 섬 사람들은 왜 사라졌나 - 2012. 04. 16.
“이스터 섬의 거대한 석상 모아이는 외계인들이 만든 작품입니다.” 1968년 스위스인 다니켄이 원주민의 역사를 통해 다소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처음이 아니었다. 모아이가 외계인의 작품이라는 주장은 이 섬이 처음 발견되면서부터 나왔다. 이 섬을 처음 방문한 네덜란드의 로헤벤은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이 섬에서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석상을 세울 수 있었는지 경탄했다. 신의 힘 빌려 위기 극복하려 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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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최상의 심리전, 도쿄 공습작전 - 2012. 04. 09.
 ‘함재기를 이용한 기습 폭격을 그린 최고의 스펙터클’. 마이클 베이 감독의 영화 ‘진주만’에 관한 평이다. 이 영화의 압권은 일본군 제로 전투기들의 실감 나는 진주만 기습 공격이다. 그러나 후반부에 진주만의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획했던 도쿄 공습작전도 감동을 준다. 육상용 폭격기를 항공모함에서 발진시키기 위해 개조하고 훈련하는 장면, 전설적인 미군 조종사 둘리틀 중령과 애국심에 가득찬 조종사들을 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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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영국-인도 플라시 전투 - 2012. 04. 02.
세계를 식민지화하려던 유럽 열강들은 16세기에 이르러 인도로 눈을 돌렸다. 처음 인도에 상륙한 무장 세력은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였다. 잇따라 영국과 프랑스도 인도에 상륙하면서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인도를 지배하던 무굴 제국의 군대는 수는 많았으나 장군들의 리더십이 형편없었고 기강이 무너져 군대다운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각 지역의 이해관계에 따른 부족 간의 분열이 심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인도의 정치적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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