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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한국사명장열전

한국사명장열전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나라가 흔들릴 때 정의를 지킨 ‘충절의 표상’ - 2015. 01. 04.
성삼문·박팽년 등 집현전 학자들과 뛰어난 학문으로 세종의 총애 받아단종 복위사건 때 유배·죽임 당해훗날 정조가 ‘죽지 않은 사육신’ 추앙  정보(鄭保·? ~ ?)는 조선 초기의 문신·정치인이다. 그의 생몰연대는 알 수가 없다. 정몽주의 손자로 정종성(鄭宗城)의 아들이다. 호는 운곡(雲谷), 본관은 영일(迎日)이다. 어머니는 죽산박씨로 제학(提學) 박중용(朴仲容)의 딸이다. 부인은 밀양박씨로 병마사(兵馬使) 박등(朴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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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끝>이순신 장군 탄신 466주년 특집 - 2011. 04. 28.
오늘 4월 28일은 이순신 장군 탄신 466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산 현충사, 경남 남해 노량과 통영 한산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의 이순신 장군 유적지에서 다채롭고 뜻 깊은 행사가 펼쳐지지만, 이번 회에는 조금 다른 면에서 장군의 뛰어난 모습을 살펴볼까 한다. 그것은 이순신 장군이 `손자병법'을 얼마나 능숙하게 잘 활용했는가 하는 문제다. 이순신 장군이 실전에서 `손자병법' 등 병법서를 응용한 경우를 살펴보자. ...
<58> 이 순 신 (하) - 2011. 04. 21.
 12척의 군함같지도 않은 군함에다 1척의 전선을 더 구해 가까스로 수군의 모양을 갖춘 이순신은 8월 29일 진도 벽파진으로 이동, 진도와 해남 간의 물목인 명량해협(鳴梁海峽)-울돌목을 최후의 방어선으로 삼고 작전을 구상했다.그런데 전부터 겁이 많던 경상우수사 배설이 도망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어서 적 함대가 나타났다는 정찰보고가 들어왔다. 전에는 왜선을 찾아다니며 격멸하던 조선수군이었으나 이제는 기다렸다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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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이 순 신 (중) - 2011. 04. 14.
육군과 달리 수군은 이순신함대만 만나면 여지없이 대패한다는 보고를 받은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마침내 `조선수군과 마주치면 싸우지 말고 도망치라'는 명령을 내리는 한편, 전국 각지에 대대적인 전함 건조를 지시했다.  해가 바뀌어 1593년 2월. 이순신은 800척으로 증강된 왜의 함대를 약 1개월 동안 7차에 걸친 해전 끝에 격멸시키니 적의 수군은 완전히 전의를 상실하고, 거제도 서쪽 해상에서는 왜선의 그림자도 볼 ...
<56>이순신(상) - 2011. 04. 07.
우리 역사가 시작된 이래 수많은 외적의 침범이 있었으나 그때마다 우리의 선조들은 뜨거운 구국의 의지와 비상한 투지로 국난을 극복해 왔다. 국난을 당할 때마다 탁월한 통솔력을 발휘해 민족적 기상을 높이 떨친 구국의 영웅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지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야말로 그 숱한 영웅·호걸·충신·열사 가운데서도 으뜸간다는 사실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순신은 인종 1년(1545년) 3월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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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권 율 (하) - 2011. 03. 31.
행주대첩기념비와 기념비각.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이 무렵 개성에 주둔하고 있던 이여송(李如松)은 행주대첩 소식을 듣자 자신의 비장을 보내 축하하고 만나보기를 청했다. 명나라 장수들이 거들먹거리며 찾아오자 권율은 성내를 정비하고 엄정한 군기 속에서 그들을 맞으니 명나라 장수들이 권율 부대의 군율이 엄정함을 보고 감히 대국 장수라며 잘난 척하지 못했다.  행주대첩 이후 권율은 고산현감 신경희(申景禧)를 선...
<54>권 율 (중) - 2011. 03. 24.
행주산성에서 내려다본 한강의 모습.독립기념관에 있는 도원수 권율 장군의 어록비. 그해 7월 1일 고바야카와 다카가게가 이끄는 왜군 부대가 전라도를 침범하기 위해 무주를 점령하고 금산으로 쳐들어 왔다. 원래 왜군은 창원에서 함안·의령·함양을 거쳐 남원·전주로 진격하려 했으나 의령에서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의 의병에게 패하자 진로를 바꿔 거창ㆍ황간을 거쳐 무주ㆍ금산으로 쳐들어 온 것이었다. 왜군이 금산에서 ...
행주대첩 기념비와 비각.#
<53>권 율 (상) - 2011. 03. 17.
행주대첩 기록화.행주대첩 기념비와 비각.우리 역사에는 때를 잘못 타고나 불운한 일생을 보낸 아까운 인재도 많았지만, 하늘이 때를 맞춰 내려준 영웅호걸도 많았으니 고구려의 을지문덕(乙支文德), 고려의 서희(徐熙)와 강감찬(姜邯贊), 그리고 조선조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나라를 구한 권율(權慄)과 이순신(李舜臣) 같은 사람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하겠다.문신이면서 기지·용맹 타고나 권율은 문신이면서도 타고난 장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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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김종서 (하) - 2011. 03. 10.
두만강 유역 6진을 개척한 명장 김종서 장군의 묘. 충남 공주시 장기면 국사봉 기슭에 있다.  조정으로 들어온 김종서는 형조판서·예조판서·병조판서 등을 지냈는데,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종서를 함길도절제사로 천거했던 황희 정승이었다. 황희는 나이 든 자신과 맹사성(孟思誠)에 이어 나라를 이끌어갈 으뜸가는 재목으로 김종서를 첫손 꼽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황희가 보기에 ...
김종서 장군과 계유정란 때 희생된 정평·정지산 부자를 모신 사당 충효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다.#
<51>김종서 (중) - 2011. 03. 03.
김종서 장군과 계유정란 때 희생된 정평·정지산 부자를 모신 사당 충효사. 충남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다. 그래도 김종서를 시기하고 헐뜯는 조정 공론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성격이 불 같은 김종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자 임금에게 이런 상소문을 올려 자신의 괴로움을 털어놓았다. - 모든 일에는 그 자취가 있으므로 아무리 흔적을 감추려 해도 숨길 수가 없사옵니다. 어떤 것이 충(忠)이고 어떤 것이 사(邪)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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