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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 > 기획/연재 > 완결 다시보는6·25

다시보는6·25

제목만 보기 | 제목+내용
“中 해군도 6·25때 투입됐다” - 2011. 09. 15.
서상문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전사추적 밝혀내 ‘9ㆍ15 인천상륙작전’의 망령에 서 벗어나지 못한 중공군이 당시 해군까지 전선에 투입한 것으로 처음 밝혀졌다.  특히 중국의 최고의 지도자 모택동(毛澤東)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전쟁 기간 내내 미국의 상륙작전 계획에 골머리를 앓으면서 동ㆍ서해안방어사령부까지 창설하는 등 대비책에 부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중공군 수뇌부는 이 같은 고심 끝에 전쟁 막바지 시점인 1953년 4월 해군 기...
<98>한국군의 창과 방패…이룡·박경원 장군 - 2008. 12. 29.
6·25전쟁 이전 육군보병학교 교수부의 술과(術科·현재 전술학과)에는 공격과 방어교관으로 이름난 두 장교가 있었다. 공격교관은 육사5기생의 이룡(李龍·함북 경성) 소령이고, 방어교관은 육사6기생의 박경원(朴敬遠·강원 고성) 소령이다. 국군에는 박경원이 또 있는데, 그는 중장(군영 출신)으로 전역해 내무장관을 지낸 박경원(朴璟遠) 장군이다. 이룡과 박경원은 전쟁 이전 국군의 전술 수준이 맹아(萌芽) 단계에 있을 때 ...
<97>이승만 대통령의 군 수뇌부 인사 - 2008. 12. 22.
이승만 대통령의 군 인사정책에는 일관성과 원칙이 있었다. 이 대통령 재임 12년 동안 국방장관 7명과 국방차관 8명이 교체됐다. 또한 이 대통령은 합참의장 4명, 육군총장 8명, 해군총장 4명, 공군총장 4명, 해병대사령관 3명을 임명했다. 그 가운데 6·25전쟁 3년 동안 국방장관은 신성모·이기붕·신태영·손원일이고, 육군총장은 채병덕·정일권·이종찬·백선엽이다. 해군총장은 손원일·박옥규, 공군총장은 김정렬·최용덕, ...
<96>이승만 대통령의 전선시찰과 애군(愛軍) 정신 - 2008. 12. 15.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의 역할과 소임을 다했다. 80세를 바라보는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는 매주 전선시찰을 통해 장병들을 격려하고 사기를 진작했다. 그를 ‘한국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사상가·학자·정치가·애국자’라고 칭송했던 미8군사령관 밴 플리트 장군은 전쟁이 끝난 다음 이승만의 당시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는 내 재임 거의 2년간을 평균 1주일에 한 번씩 나와 함께 온갖 역경을 마...
<95>한국의 영원한 우군(友軍) 미2사단 - 2008. 12. 08.
미2사단은 6·25전쟁 때 미 본토에서 최초로 한국에 증원돼 미군 사단 중 가장 많은 전투를 치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부대다. 사단은 인디언헤드·천하제일(second to none)·한국에서의 자유수호 부대라는 긍지와 자부심을 지니고 있다. 1917년 창설된 사단은 미 본토보다 한국에 더 오래 주둔한 ‘미국 국적의 한국군 사단’이나 다름없다. 91년의 역사를 지닌 사단은 미 본토에서 40년, 한국에서 47년, 유럽전선에서 4년...
<94>‘한국의 은인’ 워커 장군과 ‘미국의 은인’ 라파예트 장군 - 2008. 12. 01.
6·25 때 미군의 개입은 한국에게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총력을 기울여 한국에 물심양면의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미국은 180만 명의 병력을 파한, 3만7000명이 전사하고 10만 명이 부상했다. 37개월 동안의 전쟁에서 신생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해 싸운 미군의 희생은 참으로 값진 것이었다. 미국은 모든 희생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미국은 대통령 아들부터 미국의 희망이자 자존심인 하버드대학교의 대학생,...
<93>한국 해군의 아버지 손원일 제독 - 2008. 11. 24.
손원일 제독은 광복 후 모든 여건이 불비(不備)한 상황에서 바다를 사랑하는 사나이들을 규합, 대양 해군의 초석을 다지고 성장케 한 한국 해군 창설의 주역이다. 그런 그를 뭇사람들은 ‘한국 해군의 아버지’라 칭하며 변함없는 존경심과 애정을 표한다. 그는 마치 대한민국 해군을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해군 창설과 발전에 일생을 바친 진정한 바다의 신사였다. 한일합병 불과 1년 전인 1909년 평양에서 태어난 그는 상해 ...
<92>‘5성 장군’ 김홍일 장군과 6·25전쟁 - 2008. 11. 17.
김홍일 장군은 별 다섯 개를 의미하는 오성(五星) 장군이다. 그는 국군 최초의 원수(元帥)나 다름없다. 여기에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일찍이 중국군에서 소장까지 승진한 김홍일은 광복 후 귀국해 국군 중장까지 달고 전역한 후 자유중국 대사로 임명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1년 9월 그를 자유중국 대사로 임명한 자리에서 “김 장군이 군인으로서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하면 오성 장군으로 제대시켜야 하는데, 우리 ...
<91>유재흥 장군의 군 경력과 전투지휘 - 2008. 11. 10.
유재흥 장군은 한국군 장군 중 군 경력이 가장 화려하면서도 육군총장이 되지 못했다. 그는 14년간의 군생활 중 사단장(3번)·군단장(3번)·교육사령관·참모차장(4번)·군사령관·합참의장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이런 화려한 경력에도 불구하고 대장과 육군총장에 오르지 못했다. 그와 경쟁상대인 백선엽·정일권·이형근은 모두 대장(大將)으로 진급해 육군총장과 합참의장을 역임했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의 인품·능...
<90>강문봉 장군과 3군단 재창설 - 2008. 11. 03.
강문봉 장군은 한국군에서 지용덕(智勇德)을 겸비한 뛰어난 군인이자 가장 불운한 삶을 살았던 장군이다. 그는 6·25전쟁 때 육본 작전국장·육본 전방지휘소장·1사단장·2사단장·미 10군단 부군단장·3군단장·2군사령관(31세)의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는 백선엽·정일권 장군을 이을 차세대 리더로서 군사영어학교를 졸업 후 건군에 참여했고, 6·25전쟁 때는 기라성 같은 군 선배를 제치고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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