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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영웅김영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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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봉사활동으로 한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김영옥 대령 (2003년, 로스앤젤레스).#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9·끝>연재를 끝내며 - 2011. 06. 30.
올해 美 최고 전쟁영웅 16명에 영옥 올라 우리 장병들 중 `제2의 김영옥’ 탄생 기대 사회봉사활동으로 한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은 김영옥 대령 (2003년, 로스앤젤레스).김영옥 대령이 6·25전쟁 때 야전대대장으로 근무하면서 대대 차원에서 돌봤던 서울 경천애인사의 전쟁 고아들(1952년). 국방일보를 통해 우리 국군 장병들과 김영옥 대령의 만남을 주선했던 지난 6개월은 그의 일대기가 저자의 입장에서는 특히 감회가 깊은...
2005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레지옹도뇌르) 수여식 때의 김영옥.#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8·끝>취재기 ⑷ - 2011. 06. 29.
2005년 2월 로스앤젤레스에서 거행된 프랑스 최고 무공훈장(레지옹도뇌르) 수여식 때의 김영옥. 사실 김영옥 일대기는 훨씬 오래전에 나왔어야 했다.  그러나 필자가 그에 대해 취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1999년 여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의회가 일제강점기 징용 및 성 노예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나 회사를 상대로 미국 법정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했다. 기자로서 이 문제를 취재하다가 이런저런 ...
미국인들은 국가나 지역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피를 흘린 사람들을 영웅으로 부르며 길이나 건물에 이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사진은 200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교한 김영옥중학교.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인의 이름을 딴 중학교다.#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7>취재기 ⑶ - 2011. 06. 28.
미국인들은 국가나 지역 사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피를 흘린 사람들을 영웅으로 부르며 길이나 건물에 이들의 이름을 붙이기도 한다. 사진은 2009년 로스앤젤레스에서 개교한 김영옥중학교. 미국 역사상 최초로 한인의 이름을 딴 중학교다. 그렇지만 아무 영향력도 없는 기자가 그것도 미국에서 한글로 발행되는 신문에 아무리 기사를 쓴 들 현실적으로 그것이 미국이나 태평양 건너에 있는 한국 또는 일본에 무슨 그리 의미 있는...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6>취재기 ⑵ - 2011. 06. 27.
한국과 미국은 양국 관계에 대한 해석이나 어느 일방의 입장과는 상관없이 앞으로도 오랫동안 깊은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쌍방은 서로 정확히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사진은 1953년 6·25전쟁 정전협정에 서명하는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 함께 싸웠던 전우나 프랑스 산골의 노인들 말고도 필자를 놀라게 했던 사람은 많다. 김영옥은 2003년 한국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으면서 “6·25전쟁 때 돌봤던...
존 코백 미 육군중위(후에 대령 예편·오른쪽)가 1950년 인천상륙작전에 이어 방한복도 없이 북진에 참가했다가 중공군 참전으로 후퇴한 후에야 방한복을 지급받고 좋아하는 모습. 갑자기 전쟁에 동원된 미군도 그만큼 엉망이었다.#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5>취재기 ① - 2011. 06. 23.
국방일보를 통해 김영옥 대령과 국군 장병들이 만났던 지난 6개월은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었다. 필자는 한국을 방문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김영옥의 삶과 불패의 리더십을 주제로 강연도 한다. 그 대상에는 연세대·국민은행 등 민간 대학이나 기업도 있지만, 국방대·육군본부·해군대학·해군교육사령부·해군사관학교·공군작전사령부·공군사관학교 등 군의 부대나 교육기관도 많다. 그런데 강연 때마다 공통으로 자주 듣는 질...
한국은 영옥이 6·25전쟁에서 세웠던 불멸의 업적을 인정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에 앞선 2003년 한국은 그의 사회봉사활동을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고(왼쪽), KBS도 해외동포상(사회봉사)을 수여했다(오른쪽).#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4>촛불 ⑷ - 2011. 06. 22.
한국은 영옥이 6·25전쟁에서 세웠던 불멸의 업적을 인정해 태극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이에 앞선 2003년 한국은 그의 사회봉사활동을 인정해 국민훈장 모란장을 수여했고(왼쪽), KBS도 해외동포상(사회봉사)을 수여했다(오른쪽).전시에 또 평시에 그와 함께한 많은 사람이 영옥에게 무한히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같은 마음은 감미로운 미사여구로 들려오기도 했고, 소박한 일상용어로 들려오기도 했다. 2차대전 때 그의 소...
영옥은 전쟁 범죄나 반인도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미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면에도 영옥이 있었다. 사진은 2차대전 당시 세칭 ‘일본군 위안부’(유엔의 공식용어는 일본군 성 노예)들이 있는 ‘위안소’ 앞에서 일본군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3>촛불 ⑶ - 2011. 06. 21.
영옥은 전쟁 범죄나 반인도 범죄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미국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와 배상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이면에도 영옥이 있었다. 사진은 2차대전 당시 세칭 ‘일본군 위안부’(유엔의 공식용어는 일본군 성 노예)들이 있는 ‘위안소’ 앞에서 일본군들이 줄지어 차례를 기다리는모습. 재미일본인사회를 위한 영옥의 또 다른 대표적 봉사활동은 재미 일본계의 이민사박물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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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2>촛불 ⑵ - 2011. 06. 20.
프랑스 국민은 나치로부터 자신들을 구해 준 연합군의 공적을 치하하며 브뤼에르 및 비퐁뗀느 지역 전투에 참가했던 연합군 장병 수만 명 가운데 영옥을 골라 그의 활약상을 동판에 새겨 비퐁뗀느 성당 외벽에 붙여 두고 있다.재미일본인사회는 자신들의 자부심인 일본계 미군 장병 2차대전 참전기념비를 1999년 로스앤젤레스 다운타운에 세웠다. 이들은이 기념비 앞 별도 건축물에 작은 동판을 붙이고 ‘(건립)위원장 김영옥 대령...
영옥은 1972년 대령으로 예편 후 일생을 여성·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빈민·소수계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위해 바쳤다. 사진은 200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봉사활동으로 한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을 때의 모습.#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1>촛불 ① - 2011. 06. 16.
영옥은 1972년 대령으로 예편 후 일생을 여성·아동·청소년·노인·장애인·빈민·소수계 등 사회적 약자들의 권익을 위해 바쳤다. 사진은 2003년 로스앤젤레스에서 봉사활동으로 한국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을 때의 모습. 영옥은 불세출의 전쟁영웅이라는 신화를 뒤로 하고 1972년 대령으로 예편했다. 군사고문으로 있다가 한국을 떠난 직후 대령으로 진급한 지 7년 만이었다. 그를 잘 아는 미군들은 영옥이 장군이 되지 못한 ...
5·16 이후 청와대 경호 및 서울 방어를 위한 병력 문제는 한미 외교문제로 비화됐으나 영옥과 채명신 장군은 6·25전쟁이 맺어준 전우애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은 이 무렵 영옥(오른쪽 첫째)과 채명신(왼쪽 첫째) 장군이 함께 파티에 참석한 모습.#
아름다운 영웅 김영옥<110>청와대 ⑷ - 2011. 06. 15.
5·16 이후 청와대 경호 및 서울 방어를 위한 병력 문제는 한미 외교문제로 비화됐으나 영옥과 채명신 장군은 6·25전쟁이맺어준 전우애를 바탕으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사진은 이 무렵 영옥(오른쪽 첫째)과 채명신(왼쪽 첫째) 장군이 함께 파티에 참석한 모습. 하우즈 사령관은 느닷없이 채명신 장군을 만나라고 지시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당시 한국군에 대한 군수지원은 미국이 전적으로 맡고 있었다.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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